건널수 없는 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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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니소니 조회 44회 작성일26-08-11 13:48본문
매번 오후 출근종소리가 울릴 때면 그녀는 항상 이런 말로 우리 대화를 매듭짓군 했다. 진실보다는 례의를 더 갖추는 일본인이기는 했지만 나는 그녀의 그 말만은 믿고싶었다. 만약 그녀의 말마저도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일본에는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때 아야의 마음과 나의 마음속에는 우리의 헤여짐을 아쉬워하고 만남을 기대하는 하나의 작은 진실이 싹트고있었다. 나는 그러한 진실이 이른바 우리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말과 불륜이라는 말과 얼마나 멀고 가까운지 모른다. 나는 다만 우리가 향수하는 온전한 현실과 그러한 현실속에 진주처럼 빛을 발하며 들어앉고있는 진실- 리혼한 녀자와 집을 멀리 떠난 남자가 서로 인간으로 가까워지고싶어하는 진실-을 믿고싶었을뿐이다.
비록 점심시간만을 리용하여 대화하는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언제 한번 퇴근후에 다시 만나 그 아쉬움을달래려고 하지 않았다. 퇴근을 알리는 회사의 종소리는 언제나 같은 시간에 울렸지만 그녀와 나의 귀가는 항상 어긋났다. 나는 아르바이트였기에 오후 5시만 되면 무작정 퇴근해도 됐지만 그녀는 사원이여서 퇴근시간뒤에도 회사에 남아 잔업을 해야 했다. 아이를 돌봐야 하는 엄마였음에도 그녀는 퇴근시간보다 늘 한시간 정도 늦게 퇴근했다. 일주일중 그녀가 휴식하는 요일은 다만 수요일 하루뿐이였다.
그녀가 살고있는 집이 우리 집과 강 하나를 사이두고있다는것을 내가 안것은 지난 여름의 어느 일요일이였다. 그날, 아침부터 쏟아붓기 시작한 비는 저녁까지도 끊어질줄 몰랐다. 비오는 날이면 나는 언제나 바이크를 집에 두고 전차로 출퇴근하군 했다. 그날도 비가 왔기에 나는 전차로 출근했다. 하루일을 다 끝내고 회사밖에 나서니 비는 그때까지도 숙어들지 않고 계속 억수로 쏟아지고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래일 발표할 리포트를 써야 했기에 나는 겁없이 비속에 뛰여들었다. 회사에서 전철역까지 걸어가자면 대개 2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였다.
내가 회사 정문을 나와 10분정도 걸었을가 할 때, 누군가 뒤를 따라오면서 요란하게 경적을 울려댔다. 나는 그 경적소리를 나더러 길을 비켜달라는 뜻으로 알고 유보도섶에 더 바싹 다가붙어 걸었다.
《킨상─!》
갑자기 차소리와 비소리를 꿰뚫고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하면서 뒤돌아보니 비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자가용차안에서 아야가 나를 향해 소리치고있었다. 나의 눈길과 마주치자 그녀는 어서 차에 올라타라고 힘차게 손짓했다. 나는 그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그녀의 차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집이 어디지요?》
그녀가 액셀러를 힘있게 밟으며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나를 집까지 바래주겠다는 뜻이였다. 모토마치 고소아빠트라고 하자 그녀 입에서 갑자기 《어머머머…》하는 놀라운 비명소리가 새여나왔다.
《왜 놀라지요?》
나의 말에 그녀는 익살스럽게 웃었다. 그다음 그냥 알려주기에는 너무나 아까우니 나더러 한번 맞춰보라고 했다. 혹시 그녀의 집도 모토마치 고소아빠트에 있는것은 아닐가? 나의 머리엔 얼핏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그러나 내가 들어있는 아빠트는 시에서 경영하는 아빠트이기에 그녀가 살고있을리 만무했다. 시영 아빠트나 현영 아빠트는 외국 류학생이나 수입이 적은 일본인들을 대상하는 일종 복리성적인 주택이였다.
《혹시 아야상의 집으로 가자면 꼭 내가 사는 모토마치 고소아빠트를 지나가야 하는것은 아닐가요? 가는 방향이 같으니까 이렇게 놀라는거지요?》
나의 말에 그녀는 또다시 얼굴에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헤에─?!》했다.
《절반은 알아맞췄네요.》
그녀는 우선 이렇게 말해놓고 조금 동안을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머지 절반은 킨상으로서는 어떻게 해도 알아맞추지 못할거예요. 그래서 알려주는건데요, 우리 집은 킨상 집과 강 하나를 사이두고있어요.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집에서 창문을 열어젖히면 킨상네가 살고있는 아빠트가 환히 보인다는 말이예요. 어때요. 놀랄만 하지요?》
그녀가 말하는 강이란 오타가와를 말한다. 오타가와는 너비가 약 백메터 정도밖에 안되기에 이쪽 기슭에서 대안을 바라보면 건너쪽 사람의 얼굴마저 선명하게 가려볼수 있다. 만약 오타가와강이 우리사이에서 흐르지 않는다면 그녀와 내가 사는 아빠트는 이름마저 같은 한동네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넓지도 길지도 않은 오타가와강 하나때문에 그녀와 나는 모토마치쵸와 카미야쵸라는 전혀 다른 이름을 가진 동네에서 각기 살고있는것이다.
그날 나는 이상하게 그녀의 말에 놀라지 않았다. 그녀가 꼭 나와 가까운 곳에서 살아야 할 리유가 없었음에도 나는 마치 우리가 강 하나를 사이두고 살아온 일을 오래전부터 알고있었던것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있었다. 그러고보니 그녀는 내가 어디에선가 몇번 본 얼굴 같기도 했다. 어디에서 보았을가? 나는 핸들을 잡고 신나게 차를 모는 그녀의 옆모습을 뜯어보며 혼자 이런 생각을 하고있었다. 백화점? 다리우? 커피점? 산데이야쌍? 뽀프라? 쎄븐일레븐? 햐카다라면점? 공민관?…
그녀의 제의로 그날 우리는 내가 사는 마을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있지 않은 《아오이야마》(靑山) 커피점에 들려 커피 한잔씩 했다. 그녀는 아메리카 홋또 커피, 나는 멕시코 랭커피를 각각 주문했다. 우리가 커피점에 들린 리유를 그녀는 《서로 강 하나 사이두고 가깝게 살아왔다는것을 축하하기 위해서》로 하자고 말했다. 함께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도 꼭 무슨 리유가 필요하냐고 내가 말하자 그녀는 리유를 달고 커피를 마시면 맛이 달라진다고 했다. 커피에 두숟가락 분량의 프림을 탄 나와는 달리 그녀는 프림이나 설탕을 타지 않았다. 내가 왜 프림을 타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는 커피의 순수한 맛을 느껴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프림이나 설탕을 타면 커피의 원래 맛이 사라져버린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백여년동안 서양문명을 받아들인 일본땅에서 유일무이하게 남은 한점의 정토(淨土)를 발견한듯해서 감동까지 했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을 리용해 대화할 때와는 달리 그녀와 나는 그날 어색할만큼 말을 적게 했다. 그녀는 중국에 대한 질문을 한마디도 던지지 않았다. 별로 웃지도 않았다. 비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이따금 길게 한숨을 쉬기도 하고 뜨거운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가끔 수심에도 잠기군 하는 그녀의 모습은 낯설다 못해 신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말은 적었지만 그녀의 입에서 가담가담 흘러나오는 이야기에는 그때까지 내가 미처 몰랐던 슬픈 사연들만이 담겨있었다. 그녀는 그날 자기는 3년전에 남편과 리혼하고 지금 다섯살에 나는 딸 하나만 데리고 세집살이를 하고있다고 했다. 출신은 원래 동경이였는데 8년전에 남편과 결혼한 뒤 이곳 지방도시로 옮겨오게 됐고 지금은 처지가 전도돼서 원래 지방사람이였던 남편이 동경에서 살고 동경사람이였던 자기가 지방에서 산다고 했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남편과 리혼한 원인까지 들려주었다. 어느날 친정으로 놀러갔다가 계획보다 하루 일찍 집으로 돌아왔는데 홀로 있어야할 남편옆에 웬 녀자가 누워있더라는것이였다.
《그 녀자가 누구였는지 아세요?》
갑자기 그녀가 쓰겁게 웃으며 물었다.
《누구였지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커피잔옆 유리병에 꽂힌 빨간 장미가 슬프게 예뻤다.
《대학교때 나와 한 합숙에서 지냈던 동창이였어요! 우습지요?》
한참후 그녀가 말했다. 아픈 사연을 말하는데도 그녀는 얼굴에 미소까지 지어보였다. 물론 랭소였다. 나는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남의 말을 하듯 남편의 외도를 쉽게 뿜어내는 그녀의 차가운 입술은 그녀가 이미 과거의 그늘에서 많이 벗어나있음을 말해주고있었기때문이였다.
《킨상은 행복하겠죠?》
한참후 그녀가 입술에 댔던 커피잔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물었다. 나는 행복하다고 해야 할지 불행하다고 해야 할지 한동안 망설였다.
《거의 6년동안이나 가족과 멀리 떨어져서 살아온 내가 행복하면 얼마나 행복할가요? 누구에게나 다 말할수 없는 아픔 같은것들은 있는거 아닐가요?》
《물론 그건 그렇지요.》
그녀는 나의 안해나 아이가 다 중국에서 살고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처음 내가 그런 말을 했을 때에는 그녀도 많이 놀라했지만 그날은 6년이라는 나의 말에 서글픈 웃음만 지어보일뿐이였다.
《어서 학업 성취하고 가족에게로 돌아가셔야지요.》
그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나는 《물론 그래야지요.》하고 말하면서도 《돌아가셔야지요.》하는 그녀의 말에 어떤 말할수 없는 실의 같은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날 나를 우리 집까지 바래주었다. 도중에 그녀는 강건너쪽에 있는 자기집 아빠트를 가리켜보이면서 자기는 7층에서 산다고 했다. 7층이라는 말에 나는 《설마?!》 했다. 묘하게도 나도 7층에서 살고있었던것이다. 서로 강 하나 사이두고있을뿐만아니라 같은 7층에서 살기까지 한다는 근사점과 일치점을 놓고 그녀는 금방까지 슬픈 이야기를 했던 녀자 같지 않게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나나, 나나(7.7)라? 참 재미나는 수자인데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가 왜 《재미나는 수자》라고 말하는지 그 뜻을 알것 같았다.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7.7은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번씩 만난다는 《타나바다》를 의미한다. 지금도 《타나바다》가 되면 일본의 일부 지역의 젊은 련인들은 연등이 밝게 켜진 아늑한 공원의 수림속에 마주 앉아 밤 깊도록 술을 마셔가면서 사랑을 속삭이는 전통을 이어가고있다. 그러나 아야와는 달리 나는 《타나바다》와는 전혀 관계도 없는, 중일전쟁의 심벌인 북경의 《7.7로구교사변》을 떠올렸다. 《7.7》이라는 수자앞에서 우리는 견우와 직녀를 떠올리는 일본 녀자와 《7.7사변》을 떠올리는 중국남자로 갈라져있었다.
《아오이야마커피점》에서 함께 커피를 마신 일이 있은후, 나와 그녀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져갔다. 이전에는 서로 회사식당에서 만날 때마다 중국문제만을 화제거리로 삼았었는데 그 일이 있은 뒤에는 화제가 서서히 사적인 생활에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매번 나를 만날 때마다 《어제는 뭘 했는가?》《래일은 뭘 할 타산인가?》를 묻군 했다. 물론 나도 똑같은 물음을 그녀에게 던졌다. 나의 사생활을 캐고드는 그녀가 나는 시끄럽지 않았다. 그녀 또한 내가 물으면 아침에 뭘 먹었고 어제는 어디로 갔었다는것까지 말해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일을 조금씩 확인하고 간섭하는것으로 상대방의 사생활속에 적당히 다가서려 했다.
그녀에게 다가가기를 갈망하는 내가 때로는 불안하기도 했지만 나에겐 그러는 나를 가로막을만한 의지도 없었다. 일본이라는 틀, 대학원이라는 상자속에서 항상 숨막히게 살아온 나에게 있어서 그녀는 해오라기 날아예는 바다, 구름이 떠가는 하늘, 산이 솟고 강이 흐르고 들이 펼쳐진 륙지로 통할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녀가 없던 과거에는 다른 통로들도 많이 보였었는데 그녀가 나의 앞에 나타난 뒤로는 그런 통로들이 다 막히고 오로지 그녀의 통로만이 보일뿐이였다. 나는 그녀가 점점 나에게로 다가서는것을 알면서도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혹시 그녀가 도중에서 포기할가봐 더 재미나는 화제로 그녀의 가슴에 불을 지피군 했다. 물론 그랬다고 해서 내가 꼭 그녀를 육체적으로 점유하고싶었던것만은 아니였다. 나는 그때 일본인인 그녀가 나의 곁에 있어주는것만으로도 좋았고 그녀의 기슭에서 내가 바장이는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녀와 강 하나를 사이두고 살았지만 나는 언제 한번 그녀더러 우리 집으로 오라고 청한적이 없다. 밤에 함께 강가를 거닐자거나 여느 술집으로 가서 한잔 하자고 청한적도 없다. 나는 일본인인 그녀와의 접촉을 강하게 원한 동시에 중국으로 돌아가기도 간절하게 원한 갈등의 교차점에 서있었다. 중국에는 나의 가족이 있고 할아버지, 아버지, 형님을 묻은 선산이 있다.
회사로 출근하는 이외의 날에는 나는 거의 두문불출하고 론문을 쓰기에 바빴다. 일본 같이 민족차별이 심한 곳에서 내가 재일조선인문학을 연구한다는것이 얼마나 힘든것인지를 알면서도 나는 그에 대한 연구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김사량, 김달수, 김석범, 리회성, 김학영, 이량지, 유미리… 《재일조선인문학의 민족문제연구》라는 나의 론문테마의 주역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중국조선족인 나에게 이런 물음을 제기해왔다. 너는 누구인가? 너는 지금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가고있는가? 너에게 있어서 고국이란 무엇이고 중국이란 무엇인가? 너는 왜 일본까지 와서 재일조선인문학을 연구하는가? 너는 일본을 미워하면서도 왜 일본녀자를 원하고있는가? 똑같은 고국을 놓고도 너는 왜 조선보다 한국으로 더 가고싶어하는가?… 다른 사람에게는 이런것들이 하나의 난센스로 느껴질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문제를 가지고 한때 심각하게 고민까지 했다. 왜냐하면 이런 문제를 가지고 나자신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하면 언제나 답이 나오지 않았기때문이다. 46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내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사실은 내가 살아온 지난 인생을 난감하게도 했고 슬프게도 했다. 이런 문제에 대한 확실한 해답도 못하는 내가 과연 중국조선족이라는 신분을 떳떳Ç構Ô 밝히면서 살아갈 자격이라도 있는것일가.
나는 일본에서 많이 파괴되기도 했고 수립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떻게 파괴되고 어떻게 수립된다고 해도 나는 중국인인 나, 조선족인 나를 물갈이하듯 갱신해버릴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쩔수 없는 중국인이요, 조선족인 운명을 짊어지고 이 세상을 계속 살아가는수밖에 없다.
아야는 내가 이런 불투명한 인간인줄도 모르고 나를 좋아하기만 했다. 혹시 그녀는 내가 이런 모호한 인간이기에 더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언제인가 그녀는 나에게 《킨상은 드놀지 않는 남자같다》는 말을 한적이 있었다. 부평초처럼 떠도는 나에게 그녀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나는 알 방법이 없다. 아야와는 달리 안해는 늘 나를 《랑자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람》이라고 비꼬았다. 떠돌이를 많이 했던 조상들처럼 나도 한곳에 안착하지 못한다는 뜻이였다. 안해의 말처럼 내가 정말 나의 몸에 숨어있는 《랑자의 유전자》의 반란으로 일본까지 흘러왔는지도 모른다. 일본인인 아야와 뿌리도 내릴수 없는 금단의 길을 함께 걸으려 했던것도 그 《랑자의 유전자》때문이 아니였을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녀와 있었던 그 밤을 잊을수 없다. 그날 그녀는 술을 마신채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에서 그녀는 울고있었다. 왜 우느냐는 나의 말에 그녀는 그냥 울고싶어서 운다고 했다. 그런 말이 어디 있느냐고 하자 그녀는 왜 이런 경우가 있을수 없느냐며 더 슬프게 울었다. 그녀의 울음과 말에서 취기가 흠뻑 느껴졌다. 한참후 지금 당장 자기 집으로 와줄수 없는가고 그녀가 물어왔다. 나는 왜 라는 물음이 선뜻 나가지 않았다. (가볼수도 있잖아!) 나의 몸 어디에선가 이런 웨침이 울려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내가 물었다. 그녀는 와보면 알것 아니냐고 했다. 그다음 오고 안오고는 나더러 알아서 판단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내가 왜 그녀 집으로 한밤중에 가야 하는지 모른채로 집문을 나섰다. 핸드폰으로 그녀 집번호를 다시 확인하고 내가 그녀의 문고리를 당겼을 때에는 이미 밤 10시였다. 리빙 룸에 홀로 앉아 아야가 그때까지 술을 마시고있었다. 땅콩이 담겨있는 접시와 호두알이 담겨있는 접시옆에 자그마한 생일케익이 조금 몸을 뜯기운채 쓸쓸하게 놓여있었다. 케익우에 꽂힌 초불은 이미 꺼진지 오래된것 같았다. 조금 문이 열려있는 문틈사이로 자그마한 애 하나가 입을 하 벌리고 자고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 애가 바로 아야의 딸일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불렀지요?》
내가 아야에게로 다가가면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보면 몰라요?!》
아야가 취기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야의 앞에 구멍 뚫린 캔 맥주가 북극의 펜귄새처럼 일렬로 서있었다.
《오늘 애와 함께 나의 생일을 쇠였어요. 애가 웃고 떠들다가 저렇게 잠드니까 갑자기 내가 홀로 남았다는 생각에 견딜수가 없었어요. 혼자 술을 마시면서 울다가 갑자기 킨상 생각이 나더군요.》
아야가 머리에 손가락을 깊이 박으며 습기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마로 길게 흘러내린 그녀의 머리카락이 술에 취한 그녀의 눈을 섹시하게 가리워주고있었다. 아야는 그 머리카락사이로 당금 나를 흡수해버릴듯 탐욕스럽게 쳐다보고있었다.
《왜 그렇게 보고만 있어요. 킨상도 초대에 불을 붙이고 나의 생일을 축하해줘야 할것 아니예요?! 나 오늘 킨상의 축하를 꼭 받고싶단 말이예요. 킨상의 축하를 받으면 중국의 축하를 받는것이 되니까. 13억 중국인의 축하를…》
스스로도 자기 말이 우스웠던지 그녀가 밥상 모서리에 머리를 비비며 키드득 웃었다. 손가락에 끼인 그녀의 금반지는 여전히 빛을 잃지 않고있었다. 그 금반지를 보면서 나는 어느 남자가 끼워준것일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전남편이 아닌 또다른 한 남자가 그녀의 생활속에 뛰여들고있는것 같은 생각에 나는 말못할 질투심 같은것을 느꼈다.
나는 그녀의 말대로 이미 타다만 초대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나도 맥주를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억눌린듯 우울하고 막힌듯 답답했던 가슴이 맥주에 의해 확 열리는것 같았다. 그녀는 정신없이 맥주를 마셔대는 나를 말없이 뜯어보다가 흐드러지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왜 킨상을 좋아하는지 아세요?》
나를 좋아한다는 말을 그녀는 그날 처음으로 했다. 처음 하는 말, 처음 듣는 말임에도 그녀는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나는 놀라지 않았다.
《왜 좋아하지요?》
내가 웃으며 물었다. 꼭 듣고싶으냐며 그녀가 술에 취한 눈으로 윙크했다.
《두가지 점이예요.》
그녀가 손가락 두개를 나의 앞에 우습게 뽑아보였다.
《첫째는 스케베같은 남자이기때문이예요. 나 스케베를 좋아하니까.》
스케베란 우리 말로 바람쟁이라는 뜻이였다.
《왜 스케베를 좋아하는가 하면 우선 건강한 남자니까. 그리구 녀자를 사랑할줄 아는 남자니까. 건강하구 녀자를 사랑할줄 아는 남자니까 더 많은 녀자가 모여들기 마련이구 더 많은 녀자가 모여드니까 스케베가 된거지요. 스케베 남자는 그래서 녀자가 만드는거예요. 이것이 어느 나라 사람들의 론리냐 하면 일본사람들의 론리예요.》
그녀의 말에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내여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도 긴 머리채를 흔들며 킥킥 숨이 넘어갈듯 웃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가 《쉬-》하며 손가락을 입술우에 곧게 세웠다. 애가 놀라니 소리를 낮추라는 뜻이였다.
《두번째는…》
그녀가 숨을 죽이며 또 킥 웃었다.
비록 점심시간만을 리용하여 대화하는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언제 한번 퇴근후에 다시 만나 그 아쉬움을달래려고 하지 않았다. 퇴근을 알리는 회사의 종소리는 언제나 같은 시간에 울렸지만 그녀와 나의 귀가는 항상 어긋났다. 나는 아르바이트였기에 오후 5시만 되면 무작정 퇴근해도 됐지만 그녀는 사원이여서 퇴근시간뒤에도 회사에 남아 잔업을 해야 했다. 아이를 돌봐야 하는 엄마였음에도 그녀는 퇴근시간보다 늘 한시간 정도 늦게 퇴근했다. 일주일중 그녀가 휴식하는 요일은 다만 수요일 하루뿐이였다.
그녀가 살고있는 집이 우리 집과 강 하나를 사이두고있다는것을 내가 안것은 지난 여름의 어느 일요일이였다. 그날, 아침부터 쏟아붓기 시작한 비는 저녁까지도 끊어질줄 몰랐다. 비오는 날이면 나는 언제나 바이크를 집에 두고 전차로 출퇴근하군 했다. 그날도 비가 왔기에 나는 전차로 출근했다. 하루일을 다 끝내고 회사밖에 나서니 비는 그때까지도 숙어들지 않고 계속 억수로 쏟아지고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래일 발표할 리포트를 써야 했기에 나는 겁없이 비속에 뛰여들었다. 회사에서 전철역까지 걸어가자면 대개 2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였다.
내가 회사 정문을 나와 10분정도 걸었을가 할 때, 누군가 뒤를 따라오면서 요란하게 경적을 울려댔다. 나는 그 경적소리를 나더러 길을 비켜달라는 뜻으로 알고 유보도섶에 더 바싹 다가붙어 걸었다.
《킨상─!》
갑자기 차소리와 비소리를 꿰뚫고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하면서 뒤돌아보니 비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자가용차안에서 아야가 나를 향해 소리치고있었다. 나의 눈길과 마주치자 그녀는 어서 차에 올라타라고 힘차게 손짓했다. 나는 그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그녀의 차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집이 어디지요?》
그녀가 액셀러를 힘있게 밟으며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나를 집까지 바래주겠다는 뜻이였다. 모토마치 고소아빠트라고 하자 그녀 입에서 갑자기 《어머머머…》하는 놀라운 비명소리가 새여나왔다.
《왜 놀라지요?》
나의 말에 그녀는 익살스럽게 웃었다. 그다음 그냥 알려주기에는 너무나 아까우니 나더러 한번 맞춰보라고 했다. 혹시 그녀의 집도 모토마치 고소아빠트에 있는것은 아닐가? 나의 머리엔 얼핏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그러나 내가 들어있는 아빠트는 시에서 경영하는 아빠트이기에 그녀가 살고있을리 만무했다. 시영 아빠트나 현영 아빠트는 외국 류학생이나 수입이 적은 일본인들을 대상하는 일종 복리성적인 주택이였다.
《혹시 아야상의 집으로 가자면 꼭 내가 사는 모토마치 고소아빠트를 지나가야 하는것은 아닐가요? 가는 방향이 같으니까 이렇게 놀라는거지요?》
나의 말에 그녀는 또다시 얼굴에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헤에─?!》했다.
《절반은 알아맞췄네요.》
그녀는 우선 이렇게 말해놓고 조금 동안을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머지 절반은 킨상으로서는 어떻게 해도 알아맞추지 못할거예요. 그래서 알려주는건데요, 우리 집은 킨상 집과 강 하나를 사이두고있어요.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집에서 창문을 열어젖히면 킨상네가 살고있는 아빠트가 환히 보인다는 말이예요. 어때요. 놀랄만 하지요?》
그녀가 말하는 강이란 오타가와를 말한다. 오타가와는 너비가 약 백메터 정도밖에 안되기에 이쪽 기슭에서 대안을 바라보면 건너쪽 사람의 얼굴마저 선명하게 가려볼수 있다. 만약 오타가와강이 우리사이에서 흐르지 않는다면 그녀와 내가 사는 아빠트는 이름마저 같은 한동네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넓지도 길지도 않은 오타가와강 하나때문에 그녀와 나는 모토마치쵸와 카미야쵸라는 전혀 다른 이름을 가진 동네에서 각기 살고있는것이다.
그날 나는 이상하게 그녀의 말에 놀라지 않았다. 그녀가 꼭 나와 가까운 곳에서 살아야 할 리유가 없었음에도 나는 마치 우리가 강 하나를 사이두고 살아온 일을 오래전부터 알고있었던것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있었다. 그러고보니 그녀는 내가 어디에선가 몇번 본 얼굴 같기도 했다. 어디에서 보았을가? 나는 핸들을 잡고 신나게 차를 모는 그녀의 옆모습을 뜯어보며 혼자 이런 생각을 하고있었다. 백화점? 다리우? 커피점? 산데이야쌍? 뽀프라? 쎄븐일레븐? 햐카다라면점? 공민관?…
그녀의 제의로 그날 우리는 내가 사는 마을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있지 않은 《아오이야마》(靑山) 커피점에 들려 커피 한잔씩 했다. 그녀는 아메리카 홋또 커피, 나는 멕시코 랭커피를 각각 주문했다. 우리가 커피점에 들린 리유를 그녀는 《서로 강 하나 사이두고 가깝게 살아왔다는것을 축하하기 위해서》로 하자고 말했다. 함께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도 꼭 무슨 리유가 필요하냐고 내가 말하자 그녀는 리유를 달고 커피를 마시면 맛이 달라진다고 했다. 커피에 두숟가락 분량의 프림을 탄 나와는 달리 그녀는 프림이나 설탕을 타지 않았다. 내가 왜 프림을 타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는 커피의 순수한 맛을 느껴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프림이나 설탕을 타면 커피의 원래 맛이 사라져버린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백여년동안 서양문명을 받아들인 일본땅에서 유일무이하게 남은 한점의 정토(淨土)를 발견한듯해서 감동까지 했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을 리용해 대화할 때와는 달리 그녀와 나는 그날 어색할만큼 말을 적게 했다. 그녀는 중국에 대한 질문을 한마디도 던지지 않았다. 별로 웃지도 않았다. 비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이따금 길게 한숨을 쉬기도 하고 뜨거운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가끔 수심에도 잠기군 하는 그녀의 모습은 낯설다 못해 신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말은 적었지만 그녀의 입에서 가담가담 흘러나오는 이야기에는 그때까지 내가 미처 몰랐던 슬픈 사연들만이 담겨있었다. 그녀는 그날 자기는 3년전에 남편과 리혼하고 지금 다섯살에 나는 딸 하나만 데리고 세집살이를 하고있다고 했다. 출신은 원래 동경이였는데 8년전에 남편과 결혼한 뒤 이곳 지방도시로 옮겨오게 됐고 지금은 처지가 전도돼서 원래 지방사람이였던 남편이 동경에서 살고 동경사람이였던 자기가 지방에서 산다고 했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남편과 리혼한 원인까지 들려주었다. 어느날 친정으로 놀러갔다가 계획보다 하루 일찍 집으로 돌아왔는데 홀로 있어야할 남편옆에 웬 녀자가 누워있더라는것이였다.
《그 녀자가 누구였는지 아세요?》
갑자기 그녀가 쓰겁게 웃으며 물었다.
《누구였지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커피잔옆 유리병에 꽂힌 빨간 장미가 슬프게 예뻤다.
《대학교때 나와 한 합숙에서 지냈던 동창이였어요! 우습지요?》
한참후 그녀가 말했다. 아픈 사연을 말하는데도 그녀는 얼굴에 미소까지 지어보였다. 물론 랭소였다. 나는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남의 말을 하듯 남편의 외도를 쉽게 뿜어내는 그녀의 차가운 입술은 그녀가 이미 과거의 그늘에서 많이 벗어나있음을 말해주고있었기때문이였다.
《킨상은 행복하겠죠?》
한참후 그녀가 입술에 댔던 커피잔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물었다. 나는 행복하다고 해야 할지 불행하다고 해야 할지 한동안 망설였다.
《거의 6년동안이나 가족과 멀리 떨어져서 살아온 내가 행복하면 얼마나 행복할가요? 누구에게나 다 말할수 없는 아픔 같은것들은 있는거 아닐가요?》
《물론 그건 그렇지요.》
그녀는 나의 안해나 아이가 다 중국에서 살고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처음 내가 그런 말을 했을 때에는 그녀도 많이 놀라했지만 그날은 6년이라는 나의 말에 서글픈 웃음만 지어보일뿐이였다.
《어서 학업 성취하고 가족에게로 돌아가셔야지요.》
그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나는 《물론 그래야지요.》하고 말하면서도 《돌아가셔야지요.》하는 그녀의 말에 어떤 말할수 없는 실의 같은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날 나를 우리 집까지 바래주었다. 도중에 그녀는 강건너쪽에 있는 자기집 아빠트를 가리켜보이면서 자기는 7층에서 산다고 했다. 7층이라는 말에 나는 《설마?!》 했다. 묘하게도 나도 7층에서 살고있었던것이다. 서로 강 하나 사이두고있을뿐만아니라 같은 7층에서 살기까지 한다는 근사점과 일치점을 놓고 그녀는 금방까지 슬픈 이야기를 했던 녀자 같지 않게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나나, 나나(7.7)라? 참 재미나는 수자인데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가 왜 《재미나는 수자》라고 말하는지 그 뜻을 알것 같았다.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7.7은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번씩 만난다는 《타나바다》를 의미한다. 지금도 《타나바다》가 되면 일본의 일부 지역의 젊은 련인들은 연등이 밝게 켜진 아늑한 공원의 수림속에 마주 앉아 밤 깊도록 술을 마셔가면서 사랑을 속삭이는 전통을 이어가고있다. 그러나 아야와는 달리 나는 《타나바다》와는 전혀 관계도 없는, 중일전쟁의 심벌인 북경의 《7.7로구교사변》을 떠올렸다. 《7.7》이라는 수자앞에서 우리는 견우와 직녀를 떠올리는 일본 녀자와 《7.7사변》을 떠올리는 중국남자로 갈라져있었다.
《아오이야마커피점》에서 함께 커피를 마신 일이 있은후, 나와 그녀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져갔다. 이전에는 서로 회사식당에서 만날 때마다 중국문제만을 화제거리로 삼았었는데 그 일이 있은 뒤에는 화제가 서서히 사적인 생활에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매번 나를 만날 때마다 《어제는 뭘 했는가?》《래일은 뭘 할 타산인가?》를 묻군 했다. 물론 나도 똑같은 물음을 그녀에게 던졌다. 나의 사생활을 캐고드는 그녀가 나는 시끄럽지 않았다. 그녀 또한 내가 물으면 아침에 뭘 먹었고 어제는 어디로 갔었다는것까지 말해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일을 조금씩 확인하고 간섭하는것으로 상대방의 사생활속에 적당히 다가서려 했다.
그녀에게 다가가기를 갈망하는 내가 때로는 불안하기도 했지만 나에겐 그러는 나를 가로막을만한 의지도 없었다. 일본이라는 틀, 대학원이라는 상자속에서 항상 숨막히게 살아온 나에게 있어서 그녀는 해오라기 날아예는 바다, 구름이 떠가는 하늘, 산이 솟고 강이 흐르고 들이 펼쳐진 륙지로 통할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녀가 없던 과거에는 다른 통로들도 많이 보였었는데 그녀가 나의 앞에 나타난 뒤로는 그런 통로들이 다 막히고 오로지 그녀의 통로만이 보일뿐이였다. 나는 그녀가 점점 나에게로 다가서는것을 알면서도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혹시 그녀가 도중에서 포기할가봐 더 재미나는 화제로 그녀의 가슴에 불을 지피군 했다. 물론 그랬다고 해서 내가 꼭 그녀를 육체적으로 점유하고싶었던것만은 아니였다. 나는 그때 일본인인 그녀가 나의 곁에 있어주는것만으로도 좋았고 그녀의 기슭에서 내가 바장이는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녀와 강 하나를 사이두고 살았지만 나는 언제 한번 그녀더러 우리 집으로 오라고 청한적이 없다. 밤에 함께 강가를 거닐자거나 여느 술집으로 가서 한잔 하자고 청한적도 없다. 나는 일본인인 그녀와의 접촉을 강하게 원한 동시에 중국으로 돌아가기도 간절하게 원한 갈등의 교차점에 서있었다. 중국에는 나의 가족이 있고 할아버지, 아버지, 형님을 묻은 선산이 있다.
회사로 출근하는 이외의 날에는 나는 거의 두문불출하고 론문을 쓰기에 바빴다. 일본 같이 민족차별이 심한 곳에서 내가 재일조선인문학을 연구한다는것이 얼마나 힘든것인지를 알면서도 나는 그에 대한 연구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김사량, 김달수, 김석범, 리회성, 김학영, 이량지, 유미리… 《재일조선인문학의 민족문제연구》라는 나의 론문테마의 주역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중국조선족인 나에게 이런 물음을 제기해왔다. 너는 누구인가? 너는 지금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가고있는가? 너에게 있어서 고국이란 무엇이고 중국이란 무엇인가? 너는 왜 일본까지 와서 재일조선인문학을 연구하는가? 너는 일본을 미워하면서도 왜 일본녀자를 원하고있는가? 똑같은 고국을 놓고도 너는 왜 조선보다 한국으로 더 가고싶어하는가?… 다른 사람에게는 이런것들이 하나의 난센스로 느껴질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문제를 가지고 한때 심각하게 고민까지 했다. 왜냐하면 이런 문제를 가지고 나자신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하면 언제나 답이 나오지 않았기때문이다. 46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내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사실은 내가 살아온 지난 인생을 난감하게도 했고 슬프게도 했다. 이런 문제에 대한 확실한 해답도 못하는 내가 과연 중국조선족이라는 신분을 떳떳Ç構Ô 밝히면서 살아갈 자격이라도 있는것일가.
나는 일본에서 많이 파괴되기도 했고 수립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떻게 파괴되고 어떻게 수립된다고 해도 나는 중국인인 나, 조선족인 나를 물갈이하듯 갱신해버릴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쩔수 없는 중국인이요, 조선족인 운명을 짊어지고 이 세상을 계속 살아가는수밖에 없다.
아야는 내가 이런 불투명한 인간인줄도 모르고 나를 좋아하기만 했다. 혹시 그녀는 내가 이런 모호한 인간이기에 더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언제인가 그녀는 나에게 《킨상은 드놀지 않는 남자같다》는 말을 한적이 있었다. 부평초처럼 떠도는 나에게 그녀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나는 알 방법이 없다. 아야와는 달리 안해는 늘 나를 《랑자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람》이라고 비꼬았다. 떠돌이를 많이 했던 조상들처럼 나도 한곳에 안착하지 못한다는 뜻이였다. 안해의 말처럼 내가 정말 나의 몸에 숨어있는 《랑자의 유전자》의 반란으로 일본까지 흘러왔는지도 모른다. 일본인인 아야와 뿌리도 내릴수 없는 금단의 길을 함께 걸으려 했던것도 그 《랑자의 유전자》때문이 아니였을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녀와 있었던 그 밤을 잊을수 없다. 그날 그녀는 술을 마신채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에서 그녀는 울고있었다. 왜 우느냐는 나의 말에 그녀는 그냥 울고싶어서 운다고 했다. 그런 말이 어디 있느냐고 하자 그녀는 왜 이런 경우가 있을수 없느냐며 더 슬프게 울었다. 그녀의 울음과 말에서 취기가 흠뻑 느껴졌다. 한참후 지금 당장 자기 집으로 와줄수 없는가고 그녀가 물어왔다. 나는 왜 라는 물음이 선뜻 나가지 않았다. (가볼수도 있잖아!) 나의 몸 어디에선가 이런 웨침이 울려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내가 물었다. 그녀는 와보면 알것 아니냐고 했다. 그다음 오고 안오고는 나더러 알아서 판단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내가 왜 그녀 집으로 한밤중에 가야 하는지 모른채로 집문을 나섰다. 핸드폰으로 그녀 집번호를 다시 확인하고 내가 그녀의 문고리를 당겼을 때에는 이미 밤 10시였다. 리빙 룸에 홀로 앉아 아야가 그때까지 술을 마시고있었다. 땅콩이 담겨있는 접시와 호두알이 담겨있는 접시옆에 자그마한 생일케익이 조금 몸을 뜯기운채 쓸쓸하게 놓여있었다. 케익우에 꽂힌 초불은 이미 꺼진지 오래된것 같았다. 조금 문이 열려있는 문틈사이로 자그마한 애 하나가 입을 하 벌리고 자고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 애가 바로 아야의 딸일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불렀지요?》
내가 아야에게로 다가가면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보면 몰라요?!》
아야가 취기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야의 앞에 구멍 뚫린 캔 맥주가 북극의 펜귄새처럼 일렬로 서있었다.
《오늘 애와 함께 나의 생일을 쇠였어요. 애가 웃고 떠들다가 저렇게 잠드니까 갑자기 내가 홀로 남았다는 생각에 견딜수가 없었어요. 혼자 술을 마시면서 울다가 갑자기 킨상 생각이 나더군요.》
아야가 머리에 손가락을 깊이 박으며 습기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마로 길게 흘러내린 그녀의 머리카락이 술에 취한 그녀의 눈을 섹시하게 가리워주고있었다. 아야는 그 머리카락사이로 당금 나를 흡수해버릴듯 탐욕스럽게 쳐다보고있었다.
《왜 그렇게 보고만 있어요. 킨상도 초대에 불을 붙이고 나의 생일을 축하해줘야 할것 아니예요?! 나 오늘 킨상의 축하를 꼭 받고싶단 말이예요. 킨상의 축하를 받으면 중국의 축하를 받는것이 되니까. 13억 중국인의 축하를…》
스스로도 자기 말이 우스웠던지 그녀가 밥상 모서리에 머리를 비비며 키드득 웃었다. 손가락에 끼인 그녀의 금반지는 여전히 빛을 잃지 않고있었다. 그 금반지를 보면서 나는 어느 남자가 끼워준것일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전남편이 아닌 또다른 한 남자가 그녀의 생활속에 뛰여들고있는것 같은 생각에 나는 말못할 질투심 같은것을 느꼈다.
나는 그녀의 말대로 이미 타다만 초대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나도 맥주를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억눌린듯 우울하고 막힌듯 답답했던 가슴이 맥주에 의해 확 열리는것 같았다. 그녀는 정신없이 맥주를 마셔대는 나를 말없이 뜯어보다가 흐드러지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왜 킨상을 좋아하는지 아세요?》
나를 좋아한다는 말을 그녀는 그날 처음으로 했다. 처음 하는 말, 처음 듣는 말임에도 그녀는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나는 놀라지 않았다.
《왜 좋아하지요?》
내가 웃으며 물었다. 꼭 듣고싶으냐며 그녀가 술에 취한 눈으로 윙크했다.
《두가지 점이예요.》
그녀가 손가락 두개를 나의 앞에 우습게 뽑아보였다.
《첫째는 스케베같은 남자이기때문이예요. 나 스케베를 좋아하니까.》
스케베란 우리 말로 바람쟁이라는 뜻이였다.
《왜 스케베를 좋아하는가 하면 우선 건강한 남자니까. 그리구 녀자를 사랑할줄 아는 남자니까. 건강하구 녀자를 사랑할줄 아는 남자니까 더 많은 녀자가 모여들기 마련이구 더 많은 녀자가 모여드니까 스케베가 된거지요. 스케베 남자는 그래서 녀자가 만드는거예요. 이것이 어느 나라 사람들의 론리냐 하면 일본사람들의 론리예요.》
그녀의 말에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내여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도 긴 머리채를 흔들며 킥킥 숨이 넘어갈듯 웃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가 《쉬-》하며 손가락을 입술우에 곧게 세웠다. 애가 놀라니 소리를 낮추라는 뜻이였다.
《두번째는…》
그녀가 숨을 죽이며 또 킥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