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툴골사람-하(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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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 45회 작성일26-08-11 13:44본문
이렇게 되여 엄한규의 출당은 책벌로 바뀐 대신 세포위원장도 경고책벌을 받게 되였다. 우리모두에게는 불만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였으나 더 다른 방책은 없었다.
까툴골당원모두에게 가슴아픈 상처로 된 이 사건이 있은지 얼마후 군에 갔던 춘영의 오빠가 꼭두새벽에 되달려왔다. 김정숙동지께서 우리 군을 찾으시여 우리 같은 농민들과 로동자들을 만나 담화도 하시고 연설도 하신후 전날 저녁 온천골로 떠나셨다는 희한스런 소식때문이였다.
온 마을이 떠들썩했다. 온천골이라면 우리 골안과 오륙십리 채 안되는 곳이였다. 다들 그분을 만나뵙겠다고 떨쳐나설 때 마을존장들이 말렸다.
김정숙동지께서 아무리 농민과 로동자들까지 만나 주셨다지만 까막산골바우들이 마구 밀려가서야 되겠는가.
장시간의 공론속에 세포위원장과 내가 가기로 의합을 보았다. 하여 단벌치기 나들이옷을 갈아입은 나와 세포위원장이 온 마을의 전송을 받으며 길을 떠나게 되였다. 정한 옷을 마추지 않자면 행길로 가야 했으나 달리는 마음에 끌려 산길을 탔다. 행길로보다 한두시간 단축할수 있는 길이기때문이였다. 그런데 험한 산 두세개를 넘자 베잠뱅이차림의 엄한규가 헐썩이며 다쫓아왔다. 새벽바람으로 송이버섯을 따러 올라갔던 그가 뒤늦게 소식을 듣고 이처럼 다쫓아온것이였다. 먼발치에서 뵙기만 한다는 약속밑에 함께 갔다. 가는 도중에 전설처럼 알려진 김일성장군님의 축지법이며 백두산녀장수의 신묘한 사격술을 두고 이야기를 많이 했다.
《저… 임금님을 만날 때 존전에 현신하옵니다든가 알현하옵니다든가?》
이야기도중 엄한규가 문득 이런 물음을 올렸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라 의아해하는데 그가 재차 말했다.
《거 있잖아. 서당집할아버지가 들려주던 옛책에서 상감마마를 만나뵈일 때 소인… 아무개 하는…》
《엄동무, 그게 봉건이라는거요.》
세포위원장이 눈을 부라리는 바람에 한규는 찔끔해 입을 다물었다.
점심녘 채 안되여 소문으로만 알고있었던 《가나다대궐》에 이르렀다. 《가나다》란 이 고장에 틀고 있던 왜놈기업가의 이름이였는데 그놈이 지어놓은 이 《대궐》에서는 그 비슷한 왜놈과 부자들이 온천욕을 하며 즐겼다고 한다.
마침 지나가는 한 청년을 통해 지금 이곳에는 반일운동을 하다가 몸을 다친분과 김일성장군님밑에서 싸우다가 철알을 맞았던 투사들 몇이 와서 치료를 받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백두산녀장수께서 와계시는가의 여부는 그도 잘 모르고있었다. 졸지에 맥이 풀리고 그간의 용기도 사그라졌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집밖을 에도는데 어깨가 딱 바그라지고 눈이 칼끝 같은 젊은이가 우리를 멈춰세웠다. 보위색군복을 입은데다가 총까지 멘것으로 대번에 기가 질렸다.
어데서 왔는가, 무엇때문에 왔는가, 아래우를 훑어보며 따져드는 물음에 내가 김정숙녀사를 뵙자고 왔다는 말을 하자 그는 대번에 코방귀를 뀌였다.
《흥, 다들 이 모양이라니까. 도대체 제 정신이 있는 동무들이요. 녀사께서는 지난 밤도 꼬박 밝히시고 오늘은 약초때문에 몇십리를 걸으셨단 말이요. 그러니 두말말고 썩 돌아가오, 썩!》
《아저씨!》 하는 소리에 사납던 그의 얼굴이 부드러워졌다. 오래전부터 와있은듯 싶은 뱀장개(칠성고기) 몇마리를 버들가지에 꿰든 소년이 나무람어린 눈길로 《호통쟁이》를 쳐다보고있었다. 우리와 눈길이 마주치자 깍듯이 인사를 했다. 례사치 않은 소년이라는것으로 우리는 얼른 머리를 끄덕였다.
《아이, 많이 잡았꾸마. 정말 대단합니다.》
《호통쟁이》가 반색하는 말에 소년은 민망스러워 하는 기색이였다.
《아저씨, 난 그렇게 말씀하시는것 싫어요.》
소년은 또 한번 우리를 쳐다보고는 집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사라지자 쑥스러운 기색으로 얼굴을 붉히고있던 《호통쟁이》가 자못 상냥스럽게 말했다.
《내가 좀 소릴 쳤는데 량해를 하시우다. 나두 이 고장사람인데 동무들 맘이야 왜 모르겠소? 그렇지만 생각들 해보시우. 이렇다할 용건도 없이 다들 만나뵙자고만 오니… 그게 건국하는 인민의 도린가 말이요. 방금도 봤겠지만 저기… 어리신 자제분두 제가 자시자고 뱀장개를 낚은줄 아시우? 녀사님께서 아끼시는 혁명자들때문에 그런단 말이요. 그러니 이젠 그만 돌아들 가우다. 이건 내 혼자소리가 아니라 우리 군보안대장동지의 특별명령이우다. 명령! 명령이 뭐인지 아시우?》
그의 눈은 다시 칼끝처럼 되였다. 그때 《박동무!》 하는 소리와 함께 눈매가 별 같은 녀인이 나타났다. 그뒤로는 방금 들어갔던 소년이 따르고.
나는 《박동무》라는 책망어린 음성과 그 녀인을 본 순간 총창처럼 꼿꼿해진 《호통쟁이》를 보면서 그 녀인이 다름아닌 김정숙동지이심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내 생각이 맞았다.
《나를 찾아오셨다지요? 제가 김정숙입니다.》
그이께서는 활기찬 웃음을 머금으시며 뜨겁게 손을 잡아주시였다. 어리둥절해졌다. 그 당시 악수법이 생겨난것은 알고있었지만 김정숙동지께서 우리 같은 사람들의 손까지 잡아주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어떻게 왔느냐는 그이의 물으심에 까툴골농민들의 이름으로 인사를 올리러 왔다고 말씀 드렸다. 그이께서는 무척 반가와하면서도 딱해하시는 기색이였다.
《그때문에 예까지 오시다니요. 인사로 말하면 독립군을 하던 로인님들도 많으시다는데 제가 먼저 가뵙는것이 옳은것인데.》라고 하시면서 집으로 들어 가자고 하셨다. 들어가고싶었다. 하지만 정하게 비다듬어 입은 옷이긴 하지만 험한 산길을 오다나니 신발로부터 바지아래단까지 말이 아니여서 그만 돌아가겠다고 했다.
《돌아가다니요.》
그이께서 재차 들어가자고 말씀하실 때 《호통쟁이》 박동무가 엄한규를 잡아냈다. 집을 둘러싼 풍치림속에서 기웃거리는 그를 누군들 수상스럽게 보지 않겠는가. 박동무의 손에 끌려나오는 그의 몰골이 말이 아니였다. 걷어올린 베바지아래단의 장딴지는 풀과 흙에 게발려져있었고 피터진 자욱도 여러곳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자못 의아해하시는 기색이였다. 세포위원장이 서둘러 그가 우리 골안사람이고 당원이라는것을 못박아 말씀 드렸다.
《그런데…》
그이께서 엄한규를 보실 때 한규는 무너지듯 꿇어앉으며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렸다.
《녀사님!》
나는 속이 한줌만 해졌다. 《상감마마》와 《존전에 현신》이라던 그의 말이 되살아오르며 혹시 그런 말이 튀여나오지 않을가 하여 겁이 더럭 났다. 다행스럽게도 한규는 엎드리기만 했을뿐 더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아니, 이 동무가?!》
박동무라는 사람이 깜짝 놀라는 상을 하며 그를 잡아일으켜세웠다. 나는 그때야 김정숙동지의 안색이 몹시 흐려있음을, 노기라고 할지 슬픔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그늘이 깃들어있음을 알아보았다. 엄한규도 그것을 알아차렸던지 황황한 눈길을 어데다 둘지 몰라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래 무슨 일인가요?》
김정숙동지의 부드러운 물으심에 엄한규의 눈굽이 불깃해졌다. 꺽꺽 막히는 소리로 입을 열었다.
《전… 녀사님! 저때문에… 우리 세포위원장동무가 책벌을 받았습니다.》
《책벌이라니요?》
내가 말씀 드렸다. 엄한규의 과거사로부터 그와 세포위원장의 책벌경위를 다 듣고나신 그이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셨는데 그이의 눈에도 물기가 고이는듯 싶었다.
《다들 좋은 동무들이군요.》
그이께서는 엄한규로부터 나와 세포위원장을 따뜻한 눈길로 보시다가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우리 세상에서 동무들과 이웃들을 위하고 아끼는것이상 아름다운것은 없어요. 혁명도 마찬가지예요. 일찌기 우리 장군님께서는 혁명은 투쟁인 동시에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겨레와 동지들, 부모처자들과 이웃들에 대한 사랑! 우리가 투쟁하는 목적도 바로 이런 사랑이 온 나라에 차넘치게 하자는것이예요. 착취와 압박이 없고 눈물도 슬픔도 없는, 오직 사랑과 화목, 기쁨만이 넘치는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
열정넘쳐 하시던 그이의 말씀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비록 30분 채 안되는 시간이였지만 이날에 들려주신 그이의 말씀으로 하여 우리는 혁명과 투쟁의 온갖 진리를 다 터득한듯 싶었다.
김정숙동지와 헤여져 얼마 못 갔을 때 뜻밖에도 김정일동지께서 우리를 찾으시였다.
《이걸 바르십시오.》
그이께서는 눈이 휘둥그레 서있는 엄한규에게 크지 않은 약병을 주시며 장딴지의 상처자욱을 가리켜 보이시였다.
《의사선생님들은 자그마한 상처라도 꼭꼭 약을 발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우리 어머님도 마음을 놓으실겁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어리신 장군님의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방울이 내배여있었다. 그이와 헤여져 산언덕을 하나 넘어섰을 때 엄한규가 불현듯 풀쩍 주저앉으며 나무통을 들이쳤다.
《이거야 어디.》
황소영각 같은 소리를 내였다.
《이봐, 이게 무슨 약인지 아니? 아까징크란거야. 장주사란 놈은 매발톱에 조그마한 긁힌 자리만 나도 이걸 바르군 했는데 내 장딴지가 쩍 갈라져 피가 날 때도 그 약은 빛도 보이지 않았어. 한데… 세상 이런 인정이 어데 있나? 응, 어데 말해보라구.》
조국해방전쟁이 일자 우리 고장은 원래의 이름 뜻 그대로 까투리골이 되고말았다. 쌩쌩한 남자들은 다 군대로 나가고 나나 한규처럼 신체검사에 불합격이 된(한규는 평발이였다.) 남자들만이 남았다. 이렇게 남은 남자들도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에는 다들 관모산줄기를 타고 유격대활동을 하였다. 보름가웃 집을 떠나 싸우다가 재진공과 함께 마을에 돌아오니 전혀 예상치 않았던 불행이 한규를 기다리고있었다. 그의 처인 계월이가 동리 소들을 다 잡아먹은 괴뢰군중대의 중대장과 함께 마을을 떠났다는것이였다. 그 중대장이라는 자는 그전 술집주인노릇을 하던 5촌당숙벌 되는 사람의 아들로서 계월이의 음식솜씨때문에 제놈의 식모노릇을 하게 했다는것은 그후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당장은 아이들을 빼앗아가는 바람에 하는수없이 끌려갔다는 계월의 문제로 하여 동리사람들의 안부도 미처 물을새 없이 한규네 집부터 찾아 달려갔다.
온통 수라장이 된 한규네 집에서는 꼽새령감이 우거지상을 하고있었는데 한규는 보이지 않고 그가 곱새령감에게 맡기고 간 편지(한규는 광복된 이듬해에 문맹퇴치를 하였다.)가 있었다.
-세포위원장동지 앞. 처와 아이들을 찾으러 갑니다.
단 두줄짜리 편지를 보는 나는 땅이 무너져내리는듯 했다. 꼽새령감이 붙잡으려다못해 끝내 놓치고 말았다는 소리에 자리를 차고 일어선 나는 집안식구들을 만나러 흩어진 대원들 몇몇을 불러 두세시간전에 적들이 쫓겨난 길을 따라 줄달음을 쳤으나 군에 이르렀을 때는 적들이 도망치며 질러놓은 불을 끄느라 법석이였고 일단 거기까지 가니 한규를 찾는다는것은 바다속의 바늘을 찾기보다 더 어려우리라는것으로 희망을 잃어버리고말았다.
한규는 열흘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규를 보았다는 사람을 만나게 되였다. 군내무서원으로 관모산유격대의 정찰조원이였던 그의 말에 의하면 한규 비슷한 사람이 어대진바다가에 세워둔 적의 배에 오르다가 치렬한 육박격투끝에 잘못되였다는것이였다. 여러명의 적들이 그를 무슨 마대짝처럼 바다물에 집어던졌다고 했다. 그 사실의 진가를 확인하려 우리 마을사람 거의다가 어대진앞바다를 이틀씩이나 훑어헤맸지만 《원자탄》선전바람에 끌려가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숨진 사람 몇만을 보았을뿐 한규나 한규를 알아볼만 한 아무런 물건짝도 찾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행여나 하던 마지막희망과 기대마저 허물어졌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한규를 원망하게 됨과 함께 그보다 계월이라는 녀자를 놓고 분함을 참을길 없었다. 집안어른들과 마을로인들은 그가 간것이 제 뜻이 아니라 괴뢰군중대장의 억지다짐이였다고 재삼 말했지만 제아무리 억지 센 괴뢰군중대장일지라도 사생결단하고 뻗쳐대는 사람이라면 부디 꼭 끌고갈수야 없지 않겠는가.
나의 이런 분통어린 말에 대해 계월이한테서 크게 신세를 졌다는 집안어른들과 마을로인들도 이렇다할 반대말을 못했다.
계월의 신세라는것은 장주사네 소외양간자리에 갇혔던 어른들이 거의 매일이다싶이 계월이 가져다주는 옷가지며 음식꾸레미덕에 살아난것을 두고 하는 말이였다.
그뒤 재진공의 열파속에 나도 인차 군대에 입대할수 있었는데 이따금 주고받는 편지를 통해 한규의 뒤소식에 관심을 돌렸으나 그의 행처는 전쟁이 끝난 뒤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죽었다, 죽었다는 사람이 다시 살아날리가 있는가. 비통한 결론속에 아까운 사람을 잃게 한 계월에 대해 지울수 없는 한을 품게 되였다. 《녀자란 약한 존재》라거니,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다거니 하는 외국책들에서 나오는 글귀들을 들을 때면 계월을 련상하게 되였고 그 곱디고운 얼굴도 흉물의 가면처럼 느껴졌다. 나의 이러한 생각과 감정이 얼마나 컸던지 《계월》이라는 이름을 놓고도 락인의 도수를 더 높이게 되였다. 옛날부터 화류계나 기생노릇을 하는 녀자들이 거개가 명월이요, 화월이요 하며 달《월》자를 즐겨 썼다는것으로 그전 술집생활에서의 정절까지 의심하게 되였고 그의 집래력이 기생물림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계월이에 대한 이와 같은 감정은 그후 나의 인생길에 부닥친 젊은 녀인들과의 관계에서도 부정적역할을 미쳤다. 아니, 부정적역할이라기보다 부정적견해라고 하는것이 정확할것이다.
정치부중대장을 하던 내가 군대에 더 있지 못하고 제대된것은 1211고지계선에서 싸울 때 당한 심한 타박상의 후유증때문이였다. 그때문에 제대길은 곧바로 전상자병원으로 이어졌는데 평양을 지나던 길에 이미 제대된 전우들의 집에 들렸다. 피로써 맺어진 추억의 노래를 부르는 좌석에는 녀성들도 오군 했는데 거기서 나는 한 녀인과 눈이 맞게 되였다. 어느 성의 교환수로 일한다는 녀자는 인물도 처신도 나무랄데가 없었고 첫 대면에서부터 정감을 느끼게 되였다. 그때는 미처 느끼지 못한것이지만 계월이와 비슷한 용모와 살색에 행동거지까지 비슷했다. 그윽한 호수 같은 눈이며 간호원들과 엇섞여 까르르 웃음을 터칠 때의 입가에 새겨지는 두세줄기 주름살마저 신통히 계월이를 닮았다고 할수 있었다.
전우들의 부추김속에 이른바 사랑의 고백 비슷한 말들이 오가게 되자 녀인은 전상자병원에까지 따라 와 입맞는 음식을 사온다, 검진정형을 알아본다 하며 더없이 각근한 정을 보였다. 검진과정에 간이 나쁘다는것을 알고서는 산꿀까지 구해다주며 신심을 잃지 말라고 따뜻한 위로와 고무의 말도 해주었다. 그런데 대퇴부타박처에 대한 투시소견에서 하반신마비가 올수 있다는 결론이 내리자 그만 휴가기일이 끝났다는것으로 병원을 떠나고말았다. 그다음 한장의 편지를 보내왔는데 눈물자국이 점점이 어려있는 편지장에는 부모들의 강박으로 다른 대상자에게 시집을 가게 되니 널리 용서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뒤 전우들을 통해 알아본데 의하면 그때의 결혼이란 알쭌한 거짓말이였고 일년이 퍽 지난후에야 어느 한 무역일군에게 시집을 갔다고 했다.
이것은 나에게 커다란 심리적타격으로 된 동시에 계월이와 더불어 녀자일반을 더 깊이 연구하게 된 계기로 되였다. 후날 내가 문학에로의 길로 들어선것은 전쟁시기 함께 싸우다 희생된 전우들의 투쟁을 후세에 전하자는것과 타박상후과로 벌찬 일을 못하게 된다는것이 주되는 요인으로 되였지만 우리 사람들에게서 있을수 없는 그 비슷한 배신을 타매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하여 문학통신원으로부터 문예잡지 편집원, 작가로 조국발전의 현실과 더불어 성장하는 나날에 인간과 사랑, 사랑과 조국이라는 주제의 글도 몇편 썼으니 그때마다 그 녀자는 물론 한규와 계월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하지만 머리에 백발이 얹혀진 오늘에 와서는 그 녀자와 계월에 대해서는 거의나 잊다싶이했고 가끔 한규를 그려볼 때마다 《에익, 한심한》 하는 정도로 쉽게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고향인 까툴골에서도 한규나 계월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없었고 또 그들을 알고있는 사람도 손꼽아 몇 안되였다.
그런 어느날 엄한규가 나타났다.
온 나라가 비전향장기수들의 송환을 놓고 환호를 올리고 신문과 텔레비죤에 그들의 모습과 투쟁담들이 련이어 실리는 때에…
마감. 사랑의 힘
인조대리석바닥의 방에는 당중앙위원회일군과 나, 엄한규의 소식을 《안고온》 비전향장기수가 있었다.
《알아볼것 같습니까?》
《알아보구말구요.》
나는 치받치는 흥분을 누르며 록화기의 화면을 지켜보았다. 화면의 질은 좋지 못했다. 중간중간 지워진 곳이 많아 부득불 비전향장기수의 보충설명을 들어야 했고 나는 나대로 제딴의 상상을 보태야 했다. 이 록화테프는 이 비전향장기수가 가지고왔는데 요원들의 손을 거치는 바람에 대부분의 화면들이 지워졌다고 했다.
네면벽이 유난히 하얀 크지 않은 방에는 텔레비죤화면을 통해 알게 된 몇몇 비전향장기수들과 각양각색의 남녀들, 기자완장을 두르고 카메라와 록화촬영기를 든 사람들로 차고넘쳤다. 그통에 잡음이 심했고 묻고 대답하는 말소리도 잘 가려들을수 없었다.
다행히도 화면의 초점은 침대우에 누워있는 수염이 더부룩한 사람에게 집중되여있었다.
《나를 알겠는고?》
대답은 없었다.
가죽박띠에 묶이운채 천정만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수염이 더부룩한 사람을 놓고 엄한규라고 하기에는 반세기 가까운 세월의 풍우를 가산한다 해도 잘 믿어지지 않았다. 푹 꺼져든 볼로 하여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관골과 덩실한 코마루로써 엄한규의 실체라고 믿었다. 어찌보면 이미 숨을 거둔 뒤 같았으나 점적대의 관으로 흘러내리는 약물방울을 보며 그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수 있었다.
그 방에 모인 사람들은 몇시간 안 있어 끝날 그의 마지막호흡을 지킴과 함께 그의 최후의 말을 들으려 모인 감옥동지들과 비전향장기수후원회 성원들 그리고 《말》잡지와 《한겨레신문》기자들이였다.
그를 가죽박띠로 결박해놓은것은 폭발적인 요동으로 심장이 멎을수 있어 취한 조치라고 했다.
《그럼 나도 모르겠니?》
지리산빨찌산에서 싸운것으로 신문에 알려진 한 비전향장기수가 그의 어깨를 잡아흔들었다. 엄한규는 그때도 물끄러미 보기만 했다.
《이 문둥아, 그럼 늬 이름은 뭐냐?》
《뭐라꼬?》
남도말투였다. 한규가 입을 뗀것으로 숱한 마이크와 록음기들이 그의 얼굴을 가리웠다.
《늬 이름말이다. 늬 이름 고향 가서도 머저리되면 어쩌느냐?》
울음찬 소리에 엄한규의 눈빛이 달라졌다.
나는 가슴이 조여들었다. 적들의 심한 고문으로 20여년전부터 기억력이 적잖게 마비된데다가 뇌타박후유증에 치명적인 뇌출혈로 생명도, 사고도 분초를 다투는 마지막시각이기에 더욱 그랬다.
《뭐라꼬, 고향?》
《응, 고향말이다. 그래야 데려갈것 아니냐?》
침대가 움씰했다. 온몸을 떨며 일떠서려는 그를 여러 손이 제지시켰다. 불시에 그의 입에서 놀랄만큼 발음이 똑똑한 말소리가 튀여나왔다.
《나 엄한규, 까툴골사람이다. 까툴골, 까툴골 이다.》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의 본래고향은 남강원도인것이다.
《옳다, 맞아.》 누군가 그의 어깨를 다독여주자 한규의 얼굴에 웃음이 피는듯 싶었다.
《통일, 통일을 해야 돼. 까툴골사람들 얼마나 좋은지 아니. 손을 잡아라.》
《옳다 옳아.》
한규의 얼굴빛이 갑자기 험악해졌다. 목소리도 괴성이였다.
《늬들 알아라. 이 벌거지들아… 우리 백두산…》
여기서 말이 끊어졌다. 말이 끊어졌을뿐아니라 화면은 거멓게 흐려들고 희스무레한 줄들만이 어지럽게 뛰놀았다.
손수건으로 눈굽을 닦던 비전향장기수가 말을 떼였다.
《요원량반들이 저 대목을 지워버린것은 백두산 3대장군에 대한 선전때문이였습니다. 이자 <…벌거지들아…>라구 한것은 놈들과 대두리판싸움을 벌리며한 소리였습니다. 바깥에서 들어온 경애하는장군님의 영상사진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였습니다. 그날… 엄동지가 아니였더면… 영상사진을 잃었을것입니다. 그가… 몸뒤짐을 하는 놈들과 맞붙어 싸우는 사이에 다른 사동으로 보낼수 있었으니까요.… 그통에 엄동진… 반주검이 되였댔지요.》
비전향장기수는 잠시 말을 끊고있다가 계속했다.
《평소의 엄한규동지는 늘 고향소리를 하면서 고향에 가기 위해서도 죽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때문에 놈들의 웬간한 모욕과 드살쯤에는 맞서지두 않았고 곁의 우리 동지들까지도 보기 민망할 정도로 고분고분하기까지 했는데… 놈들도 정 악질들을 내놓고는 그의 사내싼 인품과 락천적인 행동거지때문에 그닥 심하게는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비전향장기수들을 없애는 전향공작반이 나오고 전향테로가 벌어지자부터 사자처럼 사나와졌는데 원체 기운이 장사여서 제 몸에 닿는 매채쯤에는 끄떡도 하지 않았지만 동지들이 고문을 당할때면 온 감방이 떠나갈듯이 야단을 치며 싸움을 걸었습니다. 그통에 누구보다 고문도 심하게 당하구 늘 먹감방신세를 지게 되였지요. 그런 일이 없었다면야… 이 자리엔 엄동지가 와있었을테지요.》
비전향장기수는 또다시 눈굽을 훔쳤다. 나도 흐르는 눈물을 감출수 없었다.
《그가 뇌를 상한 다음의 일이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옹근 이틀을 자지도 먹지도 않고있었는데 그가 처음 한 말이 뭔지 압니까. 작가선생의 이름을 부르며 <야, 너 날 욕 많이 했지. 하지만 까툴골의 엄한규야 엄한규지 다른 사람이 되겠니.>라고 하군벙글사 웃었습니다.
그가 체포된것은 전쟁직후에 얼마 안 남은 오대산빨찌산의 마지막소조를 이끌고 북행길에 올랐을 때입니다.》
비전향장기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끊어졌다. 록화기의 화면이 되살아났던것이였다.
침대가 놓였던 방이 아니라 두면벽에 가장집물과 책들이 가득 쌓인 널직한 방이 나타났다.
옛날식의 상복차림에 베감투를 쓴 사람들과 양복에 검은 완장을 낀 사람들이 숙연한 자세로 줄서있었다.
엄한규가 나를 보고있었다.
검은댕기가 드리운 사진속의 엄한규는 까툴골의 소년때처럼 까까중이였는데 뚝 부릅뜬 눈에는 조소와 분노가 비껴있었다. 가슴팍에는 번호표가 붙어 있었다. 감옥에서 찍은 사진을 확대한것이라고 했다. 제상밑의 향불연기가 모락모락 피여오르며 일종의 환각을 불러일으켰다.
환히 웃고있는 엄한규가 보이는가 하면 언젠가처럼 섧게 우는 모습으로도 보였다.
텔레비죤에서 본 몇명의 비전향장기수들과 생판 알지 못할 늙고 젊은 남녀 몇이 고인과 작별하는 인사말들을 하였다. 이번에는 먼저번처럼 화면까지는 지워지지 않았으나 각자의 추도사이자 애도사로 되는 부음의 말들은 거의나 짤려졌다. 대부분 그들의 입놀림과 비분에 찬 모습들로 하여 그 내용을 어렴풋이 짐작할수 있었다.
병원방장면에서 피뜩 본바 있는 흰 조선치마저고리에 머리도 하얀 녀인이 맨 먼저 제술을 붓고 그뒤를 이어 비전향장기수들과 비전향장기수후원단체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술을 부었다.
식의 마지막은 모두가 팔을 겯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는것으로 시작되였는데 3절이 끝나기 바쁘게 화면은 또다시 지워졌고 가로줄만이 계속 뛰놀았다. 나는 지워진 그 화면이 무척 보고싶었으나 물을념을 하지 않았고 록화테프를 가져온 비전향장기수도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다는 태도로 입술을 깨물고있었다. 하긴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속에 내가 먼저 말을 떼였다.
《시신은… 화장을 했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럼 유골함이라도… 가져올수 없었는가요?》
나의 물음에 흐려졌던 비전향장기수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그건 앞으로 꼭 오게 될겁니다. 그의 유언이였으니까요.》
《한데 앞으로란건…》
《그 유골함은 엄동지의 부인이 건사하고있습 니다.》
《부인?… 부인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십니까?》
《리단심이라고 하는데.》
《리단심이라구요?》
순간적으로 번쩍하던 기대가 허물어졌다. 나의 얼굴색을 가늠해본 비전향장기수로인은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그 부인도 작가선생과 까툴골사람들이 잘 알수 있는 녀인입니다. 그는 늘 작가선생네에 대해 말했고… 참 내가 늙다보니… 그의 본명은 리계월이라고 나랑 우리 여러 동지들이 지금까지 살게 된데는 그 부인의 공덕이 정말 큽니다.》
나는 숨이 꽉 막혀드는듯 했다.
《리계월! 그러니 엄한규동지의 부인도 우리 사람이였습니까?》
《우리 사람?… 작가선생이 우리 사람이라고 한 뜻은 채 모르겠지만 그가 지금껏 살고있는것이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을 위한데 있고… 또 북을, 우리 공화국을 진심으로 동경했다는 의미에서 보면 우리 사람이라고 해야 할테지요.》
머리가 핑 돌았다. 심장이 잦은 북을 쳤다.
《그가 우리 편이 된것은 언제부터입니까?》
나는 70대의 작가라기보다 10대의 소년처럼 되고 말았다. 비전향장기수로인은 눈이 휘둥그레 보다가 말을 떼였다.
《지리산빨찌산에 있던 내가 그 부인을 알게 된것은 엄동지와 같은 감옥에 있을 때인 1955년부터인데 그 부인에 대해선 엄동지한테서보다 오대산에서 그와 함께 싸우던 동지한테서 더 많이 들었습니다. 그가 살았다면 좀더 자상히 말씀 드릴수 있는데…
대략 들은데 의하면 51년 봄 오대산빨찌산의 한개 소조가 경찰서 구류장에 갇혀있는 엄동지와 리단심녀성을 구출했답니다.》
《그때 아이들은 없었답니까?》
《있었지요. 젖먹이 아들애가 있었다는데 엄동지말로는 그 애 쌍둥이누이동생도 있었는데 남으로 나올 때 잘못되였답니다. 그들이 무엇때문에 남으로 왔는지는 그도 부인도 말을 하지 않아 모르겠지만…》
《그러니 엄한규동진 경찰서에서 나오는 길로 오대산빨찌산에 갔겠습니다.》
《아니, 그는 고향으로 간다고 그들과 헤여졌는데 두달후에 다시 찾아왔더랍니다. 처음엔 다들 투쟁심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별치 않게 봤지만 2년 안 가서 지대장까지 하였으니 그가 어떤 투사였는가는 충분히 짐작하리라고 봅니다.》
《그럴테지요. 한데 그의 부인은 언제부터… 우리 사람들을 도왔습니까?》
《글쎄, 제 짐작으로는 빨찌산의 비밀아지트의 공작원을 하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부인의 말로는 아무것도 한것 없다고 한걸 봐서는 그 말을 믿어야겠지요. 엄동지의 말을 들어봐도 그렇고… 엄동지가 그 부인을 다시 만난것은 적들에게 체포된 사실이 신문에 난 때였다고 합니다. 아들애를 데리고 면회를 왔는데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비전향장기수들에 대한 후원사업을 전업으로 하고있습니다. 부인과 잘 아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자그마한 음식점을 차려놓고 돈을 좀 모았는데 그 돈이 우리를 먹이고 입혔습니다.》
눈물이 콱 솟구쳤다. 다행히도 새로운 화면이 나타났다. 제낀옷에 넥타이까지 맨 엄한규가 자그마한 앉은뱅이책상앞에 올방자를 틀고앉아있고 교복차림의 젊은 남녀들이 경건한 눈길로 그를 보고있었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해준 여러분들께 먼저 심심한 감사를 표합니다. 제가 오늘 말씀 드리려는것은 우리 혁명은… 겨레와 동지들, 부모처자들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것입니다. 이것은…》
엄한규가 한다하는 교사처럼 한손을 쳐들며 엄숙한 표정을 짓는 순간 또다시 화면이 지워졌고 뒤이어 끝났다는 표식이 새겨졌다.
이 순간 나는 반세기전의 온천골로 가있었다.
지금 나는 휴양소의 특별호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까툴골의 장주사집터에 새로 세운 이 휴양소는 로력혁신자들만을 받고있는 휴양소라지만 까툴골사람, 까툴골의 영웅을 소개한다고 하니 《특빈》대접을 받게 된것이다.
글을 쓰다가도 뭔가 막히거나 감정이 격할 때면 비록 나이 많은 몸이긴 하지만 그전날 엄한규와 함께 올랐던 관모봉 제일 높은 바위부리에 오르군 한다. 그곳에서는 백두산이 보인다.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어디서나 백두산이 보이지만 이곳에서는 마음으로만 아니라 눈으로도 보게 된다.
희스무레한 구름에 휘감겨 언제나 순결과 지조의 상징처럼 보이는 희디흰 백두산, 엄한규는 밤이고 낮이고 백두산을 보았을것이다. 그리운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 그리운 장군님을…
무엇이 그를 영웅으로 되게 하였는가.
엄한규는 까툴골사람들의 인정을 잊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인정을 새겼기에 그는 계월이라는 녀자를 버리려 하지 않았다.
엄한규는 언제 한번 백두산3대장군을 잊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김정숙어머님과 우리 장군님을 만나뵈온것은 불과 반시간도 채 못된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받아안은 사랑이 반세기 넘는 동안에도 꺼질줄 모르는 불길로 심장을 덥혔으니 그는 인간중의 인간, 영웅중의 영웅으로 되였고 영웅의 삶을 얻게 된것이다.
심장이 제일 즐겨 받아들이는것은 사랑이다.
조용한 산길을 내릴 때면 나는 계월이와의 상봉을 즐겨 그려본다. 계월은 통일되는 날 남편의 유골을 가져다 이 까툴골에 안치하겠다고 했다.
어떻게 만날가, 그날이 언제이고.
하지만 반드시 만나게 될것이라는데 대해서만은 믿어의심치 않는다. 인덕정치의 따사로운 빛발은 동서남북 어데나 없이 비쳐가는것이니 그날은 반드시 오고야말것이다.
《오해했던 나를 용서해주시오.》
나는 이렇게 말할것이다.
《오해라니요. 저는 원체 신통치 못한 녀자였던걸요. 하지만… 믿어주겠지요.》
믿고말고… 이런 때는 언젠가 나를 배신한 녀인에 대해서마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 사랑이 뜨겁지 못했던탓이라고.
나는 계월이와 함께 백두산에 가볼 꿈을 꾸며 펜을 놓는다. 백두산에는 한겨울에 올라도 후더움을 느끼게 된다.
펜을 놓으려 하니 《아까징크》(빨간약)병을 부여잡고 줄줄이 흘리던 엄한규의 눈물방울이 내 가슴을 불로 지지는것 같다.
《용서하시오. 난 동지에 대해서까지도 믿음을 잃을번 했댔소.》
마음도 밝고 세상도 더 밝게 보인다.
까툴골당원모두에게 가슴아픈 상처로 된 이 사건이 있은지 얼마후 군에 갔던 춘영의 오빠가 꼭두새벽에 되달려왔다. 김정숙동지께서 우리 군을 찾으시여 우리 같은 농민들과 로동자들을 만나 담화도 하시고 연설도 하신후 전날 저녁 온천골로 떠나셨다는 희한스런 소식때문이였다.
온 마을이 떠들썩했다. 온천골이라면 우리 골안과 오륙십리 채 안되는 곳이였다. 다들 그분을 만나뵙겠다고 떨쳐나설 때 마을존장들이 말렸다.
김정숙동지께서 아무리 농민과 로동자들까지 만나 주셨다지만 까막산골바우들이 마구 밀려가서야 되겠는가.
장시간의 공론속에 세포위원장과 내가 가기로 의합을 보았다. 하여 단벌치기 나들이옷을 갈아입은 나와 세포위원장이 온 마을의 전송을 받으며 길을 떠나게 되였다. 정한 옷을 마추지 않자면 행길로 가야 했으나 달리는 마음에 끌려 산길을 탔다. 행길로보다 한두시간 단축할수 있는 길이기때문이였다. 그런데 험한 산 두세개를 넘자 베잠뱅이차림의 엄한규가 헐썩이며 다쫓아왔다. 새벽바람으로 송이버섯을 따러 올라갔던 그가 뒤늦게 소식을 듣고 이처럼 다쫓아온것이였다. 먼발치에서 뵙기만 한다는 약속밑에 함께 갔다. 가는 도중에 전설처럼 알려진 김일성장군님의 축지법이며 백두산녀장수의 신묘한 사격술을 두고 이야기를 많이 했다.
《저… 임금님을 만날 때 존전에 현신하옵니다든가 알현하옵니다든가?》
이야기도중 엄한규가 문득 이런 물음을 올렸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라 의아해하는데 그가 재차 말했다.
《거 있잖아. 서당집할아버지가 들려주던 옛책에서 상감마마를 만나뵈일 때 소인… 아무개 하는…》
《엄동무, 그게 봉건이라는거요.》
세포위원장이 눈을 부라리는 바람에 한규는 찔끔해 입을 다물었다.
점심녘 채 안되여 소문으로만 알고있었던 《가나다대궐》에 이르렀다. 《가나다》란 이 고장에 틀고 있던 왜놈기업가의 이름이였는데 그놈이 지어놓은 이 《대궐》에서는 그 비슷한 왜놈과 부자들이 온천욕을 하며 즐겼다고 한다.
마침 지나가는 한 청년을 통해 지금 이곳에는 반일운동을 하다가 몸을 다친분과 김일성장군님밑에서 싸우다가 철알을 맞았던 투사들 몇이 와서 치료를 받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백두산녀장수께서 와계시는가의 여부는 그도 잘 모르고있었다. 졸지에 맥이 풀리고 그간의 용기도 사그라졌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집밖을 에도는데 어깨가 딱 바그라지고 눈이 칼끝 같은 젊은이가 우리를 멈춰세웠다. 보위색군복을 입은데다가 총까지 멘것으로 대번에 기가 질렸다.
어데서 왔는가, 무엇때문에 왔는가, 아래우를 훑어보며 따져드는 물음에 내가 김정숙녀사를 뵙자고 왔다는 말을 하자 그는 대번에 코방귀를 뀌였다.
《흥, 다들 이 모양이라니까. 도대체 제 정신이 있는 동무들이요. 녀사께서는 지난 밤도 꼬박 밝히시고 오늘은 약초때문에 몇십리를 걸으셨단 말이요. 그러니 두말말고 썩 돌아가오, 썩!》
《아저씨!》 하는 소리에 사납던 그의 얼굴이 부드러워졌다. 오래전부터 와있은듯 싶은 뱀장개(칠성고기) 몇마리를 버들가지에 꿰든 소년이 나무람어린 눈길로 《호통쟁이》를 쳐다보고있었다. 우리와 눈길이 마주치자 깍듯이 인사를 했다. 례사치 않은 소년이라는것으로 우리는 얼른 머리를 끄덕였다.
《아이, 많이 잡았꾸마. 정말 대단합니다.》
《호통쟁이》가 반색하는 말에 소년은 민망스러워 하는 기색이였다.
《아저씨, 난 그렇게 말씀하시는것 싫어요.》
소년은 또 한번 우리를 쳐다보고는 집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사라지자 쑥스러운 기색으로 얼굴을 붉히고있던 《호통쟁이》가 자못 상냥스럽게 말했다.
《내가 좀 소릴 쳤는데 량해를 하시우다. 나두 이 고장사람인데 동무들 맘이야 왜 모르겠소? 그렇지만 생각들 해보시우. 이렇다할 용건도 없이 다들 만나뵙자고만 오니… 그게 건국하는 인민의 도린가 말이요. 방금도 봤겠지만 저기… 어리신 자제분두 제가 자시자고 뱀장개를 낚은줄 아시우? 녀사님께서 아끼시는 혁명자들때문에 그런단 말이요. 그러니 이젠 그만 돌아들 가우다. 이건 내 혼자소리가 아니라 우리 군보안대장동지의 특별명령이우다. 명령! 명령이 뭐인지 아시우?》
그의 눈은 다시 칼끝처럼 되였다. 그때 《박동무!》 하는 소리와 함께 눈매가 별 같은 녀인이 나타났다. 그뒤로는 방금 들어갔던 소년이 따르고.
나는 《박동무》라는 책망어린 음성과 그 녀인을 본 순간 총창처럼 꼿꼿해진 《호통쟁이》를 보면서 그 녀인이 다름아닌 김정숙동지이심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내 생각이 맞았다.
《나를 찾아오셨다지요? 제가 김정숙입니다.》
그이께서는 활기찬 웃음을 머금으시며 뜨겁게 손을 잡아주시였다. 어리둥절해졌다. 그 당시 악수법이 생겨난것은 알고있었지만 김정숙동지께서 우리 같은 사람들의 손까지 잡아주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어떻게 왔느냐는 그이의 물으심에 까툴골농민들의 이름으로 인사를 올리러 왔다고 말씀 드렸다. 그이께서는 무척 반가와하면서도 딱해하시는 기색이였다.
《그때문에 예까지 오시다니요. 인사로 말하면 독립군을 하던 로인님들도 많으시다는데 제가 먼저 가뵙는것이 옳은것인데.》라고 하시면서 집으로 들어 가자고 하셨다. 들어가고싶었다. 하지만 정하게 비다듬어 입은 옷이긴 하지만 험한 산길을 오다나니 신발로부터 바지아래단까지 말이 아니여서 그만 돌아가겠다고 했다.
《돌아가다니요.》
그이께서 재차 들어가자고 말씀하실 때 《호통쟁이》 박동무가 엄한규를 잡아냈다. 집을 둘러싼 풍치림속에서 기웃거리는 그를 누군들 수상스럽게 보지 않겠는가. 박동무의 손에 끌려나오는 그의 몰골이 말이 아니였다. 걷어올린 베바지아래단의 장딴지는 풀과 흙에 게발려져있었고 피터진 자욱도 여러곳이였다. 김정숙동지께서도 자못 의아해하시는 기색이였다. 세포위원장이 서둘러 그가 우리 골안사람이고 당원이라는것을 못박아 말씀 드렸다.
《그런데…》
그이께서 엄한규를 보실 때 한규는 무너지듯 꿇어앉으며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렸다.
《녀사님!》
나는 속이 한줌만 해졌다. 《상감마마》와 《존전에 현신》이라던 그의 말이 되살아오르며 혹시 그런 말이 튀여나오지 않을가 하여 겁이 더럭 났다. 다행스럽게도 한규는 엎드리기만 했을뿐 더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아니, 이 동무가?!》
박동무라는 사람이 깜짝 놀라는 상을 하며 그를 잡아일으켜세웠다. 나는 그때야 김정숙동지의 안색이 몹시 흐려있음을, 노기라고 할지 슬픔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그늘이 깃들어있음을 알아보았다. 엄한규도 그것을 알아차렸던지 황황한 눈길을 어데다 둘지 몰라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래 무슨 일인가요?》
김정숙동지의 부드러운 물으심에 엄한규의 눈굽이 불깃해졌다. 꺽꺽 막히는 소리로 입을 열었다.
《전… 녀사님! 저때문에… 우리 세포위원장동무가 책벌을 받았습니다.》
《책벌이라니요?》
내가 말씀 드렸다. 엄한규의 과거사로부터 그와 세포위원장의 책벌경위를 다 듣고나신 그이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셨는데 그이의 눈에도 물기가 고이는듯 싶었다.
《다들 좋은 동무들이군요.》
그이께서는 엄한규로부터 나와 세포위원장을 따뜻한 눈길로 보시다가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우리 세상에서 동무들과 이웃들을 위하고 아끼는것이상 아름다운것은 없어요. 혁명도 마찬가지예요. 일찌기 우리 장군님께서는 혁명은 투쟁인 동시에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겨레와 동지들, 부모처자들과 이웃들에 대한 사랑! 우리가 투쟁하는 목적도 바로 이런 사랑이 온 나라에 차넘치게 하자는것이예요. 착취와 압박이 없고 눈물도 슬픔도 없는, 오직 사랑과 화목, 기쁨만이 넘치는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
열정넘쳐 하시던 그이의 말씀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비록 30분 채 안되는 시간이였지만 이날에 들려주신 그이의 말씀으로 하여 우리는 혁명과 투쟁의 온갖 진리를 다 터득한듯 싶었다.
김정숙동지와 헤여져 얼마 못 갔을 때 뜻밖에도 김정일동지께서 우리를 찾으시였다.
《이걸 바르십시오.》
그이께서는 눈이 휘둥그레 서있는 엄한규에게 크지 않은 약병을 주시며 장딴지의 상처자욱을 가리켜 보이시였다.
《의사선생님들은 자그마한 상처라도 꼭꼭 약을 발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우리 어머님도 마음을 놓으실겁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어리신 장군님의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방울이 내배여있었다. 그이와 헤여져 산언덕을 하나 넘어섰을 때 엄한규가 불현듯 풀쩍 주저앉으며 나무통을 들이쳤다.
《이거야 어디.》
황소영각 같은 소리를 내였다.
《이봐, 이게 무슨 약인지 아니? 아까징크란거야. 장주사란 놈은 매발톱에 조그마한 긁힌 자리만 나도 이걸 바르군 했는데 내 장딴지가 쩍 갈라져 피가 날 때도 그 약은 빛도 보이지 않았어. 한데… 세상 이런 인정이 어데 있나? 응, 어데 말해보라구.》
조국해방전쟁이 일자 우리 고장은 원래의 이름 뜻 그대로 까투리골이 되고말았다. 쌩쌩한 남자들은 다 군대로 나가고 나나 한규처럼 신체검사에 불합격이 된(한규는 평발이였다.) 남자들만이 남았다. 이렇게 남은 남자들도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에는 다들 관모산줄기를 타고 유격대활동을 하였다. 보름가웃 집을 떠나 싸우다가 재진공과 함께 마을에 돌아오니 전혀 예상치 않았던 불행이 한규를 기다리고있었다. 그의 처인 계월이가 동리 소들을 다 잡아먹은 괴뢰군중대의 중대장과 함께 마을을 떠났다는것이였다. 그 중대장이라는 자는 그전 술집주인노릇을 하던 5촌당숙벌 되는 사람의 아들로서 계월이의 음식솜씨때문에 제놈의 식모노릇을 하게 했다는것은 그후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당장은 아이들을 빼앗아가는 바람에 하는수없이 끌려갔다는 계월의 문제로 하여 동리사람들의 안부도 미처 물을새 없이 한규네 집부터 찾아 달려갔다.
온통 수라장이 된 한규네 집에서는 꼽새령감이 우거지상을 하고있었는데 한규는 보이지 않고 그가 곱새령감에게 맡기고 간 편지(한규는 광복된 이듬해에 문맹퇴치를 하였다.)가 있었다.
-세포위원장동지 앞. 처와 아이들을 찾으러 갑니다.
단 두줄짜리 편지를 보는 나는 땅이 무너져내리는듯 했다. 꼽새령감이 붙잡으려다못해 끝내 놓치고 말았다는 소리에 자리를 차고 일어선 나는 집안식구들을 만나러 흩어진 대원들 몇몇을 불러 두세시간전에 적들이 쫓겨난 길을 따라 줄달음을 쳤으나 군에 이르렀을 때는 적들이 도망치며 질러놓은 불을 끄느라 법석이였고 일단 거기까지 가니 한규를 찾는다는것은 바다속의 바늘을 찾기보다 더 어려우리라는것으로 희망을 잃어버리고말았다.
한규는 열흘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규를 보았다는 사람을 만나게 되였다. 군내무서원으로 관모산유격대의 정찰조원이였던 그의 말에 의하면 한규 비슷한 사람이 어대진바다가에 세워둔 적의 배에 오르다가 치렬한 육박격투끝에 잘못되였다는것이였다. 여러명의 적들이 그를 무슨 마대짝처럼 바다물에 집어던졌다고 했다. 그 사실의 진가를 확인하려 우리 마을사람 거의다가 어대진앞바다를 이틀씩이나 훑어헤맸지만 《원자탄》선전바람에 끌려가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숨진 사람 몇만을 보았을뿐 한규나 한규를 알아볼만 한 아무런 물건짝도 찾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행여나 하던 마지막희망과 기대마저 허물어졌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한규를 원망하게 됨과 함께 그보다 계월이라는 녀자를 놓고 분함을 참을길 없었다. 집안어른들과 마을로인들은 그가 간것이 제 뜻이 아니라 괴뢰군중대장의 억지다짐이였다고 재삼 말했지만 제아무리 억지 센 괴뢰군중대장일지라도 사생결단하고 뻗쳐대는 사람이라면 부디 꼭 끌고갈수야 없지 않겠는가.
나의 이런 분통어린 말에 대해 계월이한테서 크게 신세를 졌다는 집안어른들과 마을로인들도 이렇다할 반대말을 못했다.
계월의 신세라는것은 장주사네 소외양간자리에 갇혔던 어른들이 거의 매일이다싶이 계월이 가져다주는 옷가지며 음식꾸레미덕에 살아난것을 두고 하는 말이였다.
그뒤 재진공의 열파속에 나도 인차 군대에 입대할수 있었는데 이따금 주고받는 편지를 통해 한규의 뒤소식에 관심을 돌렸으나 그의 행처는 전쟁이 끝난 뒤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죽었다, 죽었다는 사람이 다시 살아날리가 있는가. 비통한 결론속에 아까운 사람을 잃게 한 계월에 대해 지울수 없는 한을 품게 되였다. 《녀자란 약한 존재》라거니,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다거니 하는 외국책들에서 나오는 글귀들을 들을 때면 계월을 련상하게 되였고 그 곱디고운 얼굴도 흉물의 가면처럼 느껴졌다. 나의 이러한 생각과 감정이 얼마나 컸던지 《계월》이라는 이름을 놓고도 락인의 도수를 더 높이게 되였다. 옛날부터 화류계나 기생노릇을 하는 녀자들이 거개가 명월이요, 화월이요 하며 달《월》자를 즐겨 썼다는것으로 그전 술집생활에서의 정절까지 의심하게 되였고 그의 집래력이 기생물림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계월이에 대한 이와 같은 감정은 그후 나의 인생길에 부닥친 젊은 녀인들과의 관계에서도 부정적역할을 미쳤다. 아니, 부정적역할이라기보다 부정적견해라고 하는것이 정확할것이다.
정치부중대장을 하던 내가 군대에 더 있지 못하고 제대된것은 1211고지계선에서 싸울 때 당한 심한 타박상의 후유증때문이였다. 그때문에 제대길은 곧바로 전상자병원으로 이어졌는데 평양을 지나던 길에 이미 제대된 전우들의 집에 들렸다. 피로써 맺어진 추억의 노래를 부르는 좌석에는 녀성들도 오군 했는데 거기서 나는 한 녀인과 눈이 맞게 되였다. 어느 성의 교환수로 일한다는 녀자는 인물도 처신도 나무랄데가 없었고 첫 대면에서부터 정감을 느끼게 되였다. 그때는 미처 느끼지 못한것이지만 계월이와 비슷한 용모와 살색에 행동거지까지 비슷했다. 그윽한 호수 같은 눈이며 간호원들과 엇섞여 까르르 웃음을 터칠 때의 입가에 새겨지는 두세줄기 주름살마저 신통히 계월이를 닮았다고 할수 있었다.
전우들의 부추김속에 이른바 사랑의 고백 비슷한 말들이 오가게 되자 녀인은 전상자병원에까지 따라 와 입맞는 음식을 사온다, 검진정형을 알아본다 하며 더없이 각근한 정을 보였다. 검진과정에 간이 나쁘다는것을 알고서는 산꿀까지 구해다주며 신심을 잃지 말라고 따뜻한 위로와 고무의 말도 해주었다. 그런데 대퇴부타박처에 대한 투시소견에서 하반신마비가 올수 있다는 결론이 내리자 그만 휴가기일이 끝났다는것으로 병원을 떠나고말았다. 그다음 한장의 편지를 보내왔는데 눈물자국이 점점이 어려있는 편지장에는 부모들의 강박으로 다른 대상자에게 시집을 가게 되니 널리 용서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뒤 전우들을 통해 알아본데 의하면 그때의 결혼이란 알쭌한 거짓말이였고 일년이 퍽 지난후에야 어느 한 무역일군에게 시집을 갔다고 했다.
이것은 나에게 커다란 심리적타격으로 된 동시에 계월이와 더불어 녀자일반을 더 깊이 연구하게 된 계기로 되였다. 후날 내가 문학에로의 길로 들어선것은 전쟁시기 함께 싸우다 희생된 전우들의 투쟁을 후세에 전하자는것과 타박상후과로 벌찬 일을 못하게 된다는것이 주되는 요인으로 되였지만 우리 사람들에게서 있을수 없는 그 비슷한 배신을 타매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하여 문학통신원으로부터 문예잡지 편집원, 작가로 조국발전의 현실과 더불어 성장하는 나날에 인간과 사랑, 사랑과 조국이라는 주제의 글도 몇편 썼으니 그때마다 그 녀자는 물론 한규와 계월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하지만 머리에 백발이 얹혀진 오늘에 와서는 그 녀자와 계월에 대해서는 거의나 잊다싶이했고 가끔 한규를 그려볼 때마다 《에익, 한심한》 하는 정도로 쉽게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고향인 까툴골에서도 한규나 계월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없었고 또 그들을 알고있는 사람도 손꼽아 몇 안되였다.
그런 어느날 엄한규가 나타났다.
온 나라가 비전향장기수들의 송환을 놓고 환호를 올리고 신문과 텔레비죤에 그들의 모습과 투쟁담들이 련이어 실리는 때에…
마감. 사랑의 힘
인조대리석바닥의 방에는 당중앙위원회일군과 나, 엄한규의 소식을 《안고온》 비전향장기수가 있었다.
《알아볼것 같습니까?》
《알아보구말구요.》
나는 치받치는 흥분을 누르며 록화기의 화면을 지켜보았다. 화면의 질은 좋지 못했다. 중간중간 지워진 곳이 많아 부득불 비전향장기수의 보충설명을 들어야 했고 나는 나대로 제딴의 상상을 보태야 했다. 이 록화테프는 이 비전향장기수가 가지고왔는데 요원들의 손을 거치는 바람에 대부분의 화면들이 지워졌다고 했다.
네면벽이 유난히 하얀 크지 않은 방에는 텔레비죤화면을 통해 알게 된 몇몇 비전향장기수들과 각양각색의 남녀들, 기자완장을 두르고 카메라와 록화촬영기를 든 사람들로 차고넘쳤다. 그통에 잡음이 심했고 묻고 대답하는 말소리도 잘 가려들을수 없었다.
다행히도 화면의 초점은 침대우에 누워있는 수염이 더부룩한 사람에게 집중되여있었다.
《나를 알겠는고?》
대답은 없었다.
가죽박띠에 묶이운채 천정만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수염이 더부룩한 사람을 놓고 엄한규라고 하기에는 반세기 가까운 세월의 풍우를 가산한다 해도 잘 믿어지지 않았다. 푹 꺼져든 볼로 하여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관골과 덩실한 코마루로써 엄한규의 실체라고 믿었다. 어찌보면 이미 숨을 거둔 뒤 같았으나 점적대의 관으로 흘러내리는 약물방울을 보며 그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수 있었다.
그 방에 모인 사람들은 몇시간 안 있어 끝날 그의 마지막호흡을 지킴과 함께 그의 최후의 말을 들으려 모인 감옥동지들과 비전향장기수후원회 성원들 그리고 《말》잡지와 《한겨레신문》기자들이였다.
그를 가죽박띠로 결박해놓은것은 폭발적인 요동으로 심장이 멎을수 있어 취한 조치라고 했다.
《그럼 나도 모르겠니?》
지리산빨찌산에서 싸운것으로 신문에 알려진 한 비전향장기수가 그의 어깨를 잡아흔들었다. 엄한규는 그때도 물끄러미 보기만 했다.
《이 문둥아, 그럼 늬 이름은 뭐냐?》
《뭐라꼬?》
남도말투였다. 한규가 입을 뗀것으로 숱한 마이크와 록음기들이 그의 얼굴을 가리웠다.
《늬 이름말이다. 늬 이름 고향 가서도 머저리되면 어쩌느냐?》
울음찬 소리에 엄한규의 눈빛이 달라졌다.
나는 가슴이 조여들었다. 적들의 심한 고문으로 20여년전부터 기억력이 적잖게 마비된데다가 뇌타박후유증에 치명적인 뇌출혈로 생명도, 사고도 분초를 다투는 마지막시각이기에 더욱 그랬다.
《뭐라꼬, 고향?》
《응, 고향말이다. 그래야 데려갈것 아니냐?》
침대가 움씰했다. 온몸을 떨며 일떠서려는 그를 여러 손이 제지시켰다. 불시에 그의 입에서 놀랄만큼 발음이 똑똑한 말소리가 튀여나왔다.
《나 엄한규, 까툴골사람이다. 까툴골, 까툴골 이다.》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의 본래고향은 남강원도인것이다.
《옳다, 맞아.》 누군가 그의 어깨를 다독여주자 한규의 얼굴에 웃음이 피는듯 싶었다.
《통일, 통일을 해야 돼. 까툴골사람들 얼마나 좋은지 아니. 손을 잡아라.》
《옳다 옳아.》
한규의 얼굴빛이 갑자기 험악해졌다. 목소리도 괴성이였다.
《늬들 알아라. 이 벌거지들아… 우리 백두산…》
여기서 말이 끊어졌다. 말이 끊어졌을뿐아니라 화면은 거멓게 흐려들고 희스무레한 줄들만이 어지럽게 뛰놀았다.
손수건으로 눈굽을 닦던 비전향장기수가 말을 떼였다.
《요원량반들이 저 대목을 지워버린것은 백두산 3대장군에 대한 선전때문이였습니다. 이자 <…벌거지들아…>라구 한것은 놈들과 대두리판싸움을 벌리며한 소리였습니다. 바깥에서 들어온 경애하는장군님의 영상사진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였습니다. 그날… 엄동지가 아니였더면… 영상사진을 잃었을것입니다. 그가… 몸뒤짐을 하는 놈들과 맞붙어 싸우는 사이에 다른 사동으로 보낼수 있었으니까요.… 그통에 엄동진… 반주검이 되였댔지요.》
비전향장기수는 잠시 말을 끊고있다가 계속했다.
《평소의 엄한규동지는 늘 고향소리를 하면서 고향에 가기 위해서도 죽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때문에 놈들의 웬간한 모욕과 드살쯤에는 맞서지두 않았고 곁의 우리 동지들까지도 보기 민망할 정도로 고분고분하기까지 했는데… 놈들도 정 악질들을 내놓고는 그의 사내싼 인품과 락천적인 행동거지때문에 그닥 심하게는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비전향장기수들을 없애는 전향공작반이 나오고 전향테로가 벌어지자부터 사자처럼 사나와졌는데 원체 기운이 장사여서 제 몸에 닿는 매채쯤에는 끄떡도 하지 않았지만 동지들이 고문을 당할때면 온 감방이 떠나갈듯이 야단을 치며 싸움을 걸었습니다. 그통에 누구보다 고문도 심하게 당하구 늘 먹감방신세를 지게 되였지요. 그런 일이 없었다면야… 이 자리엔 엄동지가 와있었을테지요.》
비전향장기수는 또다시 눈굽을 훔쳤다. 나도 흐르는 눈물을 감출수 없었다.
《그가 뇌를 상한 다음의 일이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옹근 이틀을 자지도 먹지도 않고있었는데 그가 처음 한 말이 뭔지 압니까. 작가선생의 이름을 부르며 <야, 너 날 욕 많이 했지. 하지만 까툴골의 엄한규야 엄한규지 다른 사람이 되겠니.>라고 하군벙글사 웃었습니다.
그가 체포된것은 전쟁직후에 얼마 안 남은 오대산빨찌산의 마지막소조를 이끌고 북행길에 올랐을 때입니다.》
비전향장기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끊어졌다. 록화기의 화면이 되살아났던것이였다.
침대가 놓였던 방이 아니라 두면벽에 가장집물과 책들이 가득 쌓인 널직한 방이 나타났다.
옛날식의 상복차림에 베감투를 쓴 사람들과 양복에 검은 완장을 낀 사람들이 숙연한 자세로 줄서있었다.
엄한규가 나를 보고있었다.
검은댕기가 드리운 사진속의 엄한규는 까툴골의 소년때처럼 까까중이였는데 뚝 부릅뜬 눈에는 조소와 분노가 비껴있었다. 가슴팍에는 번호표가 붙어 있었다. 감옥에서 찍은 사진을 확대한것이라고 했다. 제상밑의 향불연기가 모락모락 피여오르며 일종의 환각을 불러일으켰다.
환히 웃고있는 엄한규가 보이는가 하면 언젠가처럼 섧게 우는 모습으로도 보였다.
텔레비죤에서 본 몇명의 비전향장기수들과 생판 알지 못할 늙고 젊은 남녀 몇이 고인과 작별하는 인사말들을 하였다. 이번에는 먼저번처럼 화면까지는 지워지지 않았으나 각자의 추도사이자 애도사로 되는 부음의 말들은 거의나 짤려졌다. 대부분 그들의 입놀림과 비분에 찬 모습들로 하여 그 내용을 어렴풋이 짐작할수 있었다.
병원방장면에서 피뜩 본바 있는 흰 조선치마저고리에 머리도 하얀 녀인이 맨 먼저 제술을 붓고 그뒤를 이어 비전향장기수들과 비전향장기수후원단체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술을 부었다.
식의 마지막은 모두가 팔을 겯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는것으로 시작되였는데 3절이 끝나기 바쁘게 화면은 또다시 지워졌고 가로줄만이 계속 뛰놀았다. 나는 지워진 그 화면이 무척 보고싶었으나 물을념을 하지 않았고 록화테프를 가져온 비전향장기수도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다는 태도로 입술을 깨물고있었다. 하긴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속에 내가 먼저 말을 떼였다.
《시신은… 화장을 했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럼 유골함이라도… 가져올수 없었는가요?》
나의 물음에 흐려졌던 비전향장기수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그건 앞으로 꼭 오게 될겁니다. 그의 유언이였으니까요.》
《한데 앞으로란건…》
《그 유골함은 엄동지의 부인이 건사하고있습 니다.》
《부인?… 부인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십니까?》
《리단심이라고 하는데.》
《리단심이라구요?》
순간적으로 번쩍하던 기대가 허물어졌다. 나의 얼굴색을 가늠해본 비전향장기수로인은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그 부인도 작가선생과 까툴골사람들이 잘 알수 있는 녀인입니다. 그는 늘 작가선생네에 대해 말했고… 참 내가 늙다보니… 그의 본명은 리계월이라고 나랑 우리 여러 동지들이 지금까지 살게 된데는 그 부인의 공덕이 정말 큽니다.》
나는 숨이 꽉 막혀드는듯 했다.
《리계월! 그러니 엄한규동지의 부인도 우리 사람이였습니까?》
《우리 사람?… 작가선생이 우리 사람이라고 한 뜻은 채 모르겠지만 그가 지금껏 살고있는것이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을 위한데 있고… 또 북을, 우리 공화국을 진심으로 동경했다는 의미에서 보면 우리 사람이라고 해야 할테지요.》
머리가 핑 돌았다. 심장이 잦은 북을 쳤다.
《그가 우리 편이 된것은 언제부터입니까?》
나는 70대의 작가라기보다 10대의 소년처럼 되고 말았다. 비전향장기수로인은 눈이 휘둥그레 보다가 말을 떼였다.
《지리산빨찌산에 있던 내가 그 부인을 알게 된것은 엄동지와 같은 감옥에 있을 때인 1955년부터인데 그 부인에 대해선 엄동지한테서보다 오대산에서 그와 함께 싸우던 동지한테서 더 많이 들었습니다. 그가 살았다면 좀더 자상히 말씀 드릴수 있는데…
대략 들은데 의하면 51년 봄 오대산빨찌산의 한개 소조가 경찰서 구류장에 갇혀있는 엄동지와 리단심녀성을 구출했답니다.》
《그때 아이들은 없었답니까?》
《있었지요. 젖먹이 아들애가 있었다는데 엄동지말로는 그 애 쌍둥이누이동생도 있었는데 남으로 나올 때 잘못되였답니다. 그들이 무엇때문에 남으로 왔는지는 그도 부인도 말을 하지 않아 모르겠지만…》
《그러니 엄한규동진 경찰서에서 나오는 길로 오대산빨찌산에 갔겠습니다.》
《아니, 그는 고향으로 간다고 그들과 헤여졌는데 두달후에 다시 찾아왔더랍니다. 처음엔 다들 투쟁심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별치 않게 봤지만 2년 안 가서 지대장까지 하였으니 그가 어떤 투사였는가는 충분히 짐작하리라고 봅니다.》
《그럴테지요. 한데 그의 부인은 언제부터… 우리 사람들을 도왔습니까?》
《글쎄, 제 짐작으로는 빨찌산의 비밀아지트의 공작원을 하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부인의 말로는 아무것도 한것 없다고 한걸 봐서는 그 말을 믿어야겠지요. 엄동지의 말을 들어봐도 그렇고… 엄동지가 그 부인을 다시 만난것은 적들에게 체포된 사실이 신문에 난 때였다고 합니다. 아들애를 데리고 면회를 왔는데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비전향장기수들에 대한 후원사업을 전업으로 하고있습니다. 부인과 잘 아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자그마한 음식점을 차려놓고 돈을 좀 모았는데 그 돈이 우리를 먹이고 입혔습니다.》
눈물이 콱 솟구쳤다. 다행히도 새로운 화면이 나타났다. 제낀옷에 넥타이까지 맨 엄한규가 자그마한 앉은뱅이책상앞에 올방자를 틀고앉아있고 교복차림의 젊은 남녀들이 경건한 눈길로 그를 보고있었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해준 여러분들께 먼저 심심한 감사를 표합니다. 제가 오늘 말씀 드리려는것은 우리 혁명은… 겨레와 동지들, 부모처자들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것입니다. 이것은…》
엄한규가 한다하는 교사처럼 한손을 쳐들며 엄숙한 표정을 짓는 순간 또다시 화면이 지워졌고 뒤이어 끝났다는 표식이 새겨졌다.
이 순간 나는 반세기전의 온천골로 가있었다.
지금 나는 휴양소의 특별호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까툴골의 장주사집터에 새로 세운 이 휴양소는 로력혁신자들만을 받고있는 휴양소라지만 까툴골사람, 까툴골의 영웅을 소개한다고 하니 《특빈》대접을 받게 된것이다.
글을 쓰다가도 뭔가 막히거나 감정이 격할 때면 비록 나이 많은 몸이긴 하지만 그전날 엄한규와 함께 올랐던 관모봉 제일 높은 바위부리에 오르군 한다. 그곳에서는 백두산이 보인다.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어디서나 백두산이 보이지만 이곳에서는 마음으로만 아니라 눈으로도 보게 된다.
희스무레한 구름에 휘감겨 언제나 순결과 지조의 상징처럼 보이는 희디흰 백두산, 엄한규는 밤이고 낮이고 백두산을 보았을것이다. 그리운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 그리운 장군님을…
무엇이 그를 영웅으로 되게 하였는가.
엄한규는 까툴골사람들의 인정을 잊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인정을 새겼기에 그는 계월이라는 녀자를 버리려 하지 않았다.
엄한규는 언제 한번 백두산3대장군을 잊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김정숙어머님과 우리 장군님을 만나뵈온것은 불과 반시간도 채 못된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받아안은 사랑이 반세기 넘는 동안에도 꺼질줄 모르는 불길로 심장을 덥혔으니 그는 인간중의 인간, 영웅중의 영웅으로 되였고 영웅의 삶을 얻게 된것이다.
심장이 제일 즐겨 받아들이는것은 사랑이다.
조용한 산길을 내릴 때면 나는 계월이와의 상봉을 즐겨 그려본다. 계월은 통일되는 날 남편의 유골을 가져다 이 까툴골에 안치하겠다고 했다.
어떻게 만날가, 그날이 언제이고.
하지만 반드시 만나게 될것이라는데 대해서만은 믿어의심치 않는다. 인덕정치의 따사로운 빛발은 동서남북 어데나 없이 비쳐가는것이니 그날은 반드시 오고야말것이다.
《오해했던 나를 용서해주시오.》
나는 이렇게 말할것이다.
《오해라니요. 저는 원체 신통치 못한 녀자였던걸요. 하지만… 믿어주겠지요.》
믿고말고… 이런 때는 언젠가 나를 배신한 녀인에 대해서마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 사랑이 뜨겁지 못했던탓이라고.
나는 계월이와 함께 백두산에 가볼 꿈을 꾸며 펜을 놓는다. 백두산에는 한겨울에 올라도 후더움을 느끼게 된다.
펜을 놓으려 하니 《아까징크》(빨간약)병을 부여잡고 줄줄이 흘리던 엄한규의 눈물방울이 내 가슴을 불로 지지는것 같다.
《용서하시오. 난 동지에 대해서까지도 믿음을 잃을번 했댔소.》
마음도 밝고 세상도 더 밝게 보인다.

